유성진 스크랜튼학부 교수
유성진 스크랜튼학부 교수

코로나로 인한 삶의 변화는 실로 크다. 국가 전반에 걸친 경제적 타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며 일상을 잃어버린 까닭에 이에 생계를 걸어왔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전에 당연하게 향유해 왔던 사람들과의 접촉은 피하거나 극도의 조심 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까닭에 매년 새로운 학생들과의 만남 속에서 생동감과 삶의 아이디어를 찾아왔던 기쁨을 잃어버린 것은 개인적인 안타까움이지만, 강의실 밖의 대학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할 기회를 잃어버린 학생들의 아쉬움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코로나가 준 한 가지 위안거리를 찾자면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던 (혹은 미루고 있던)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올 초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불행한 사태는 우리의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유혈 항쟁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이 보여준 저항의 표시다. ‘세 손가락 경례’로 표상되는 저항의 상징이 영화 ‘헝거게임’에서 유래했다는 소식에 코로나로 인해 약속이 없어진 저녁 시간을 활용하여 영화를 찾아보게 됐고(아직도 못 봤냐는 고등학생 딸의 힐난과 함께), 궁금증에 원작 소설도 읽을 수 있었다.

수전 콜린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헝거게임에서는 모든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독재자가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각 지역(sector)을 대표하는 십 대의 젊은이들 간에 생존게임을 개최한다. 그런데 게임은 독재자의 기획과는 달리 캣니스라는 여주인공에 의해 불평등의 자각과 저항의 불꽃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내용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지만,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구현된 영상은 이를 한층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주인공 캣니스 역할로 분한 영화 '헝거게임' 시리즈는 수전 콜린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미지 출처=네이버영화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주인공 캣니스 역할로 분한 영화 '헝거게임' 시리즈는 수전 콜린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미지 출처=네이버영화

소설과 영화의 결말이 주는 메시지는 조지오웰의 오래된 소설 ‘동물농장’을 연상시킨다. 시리즈의 말미에 혁명에 성공한 주인공 캣니스의 화살은 독재자 스노우가 아닌 혁명 세력의 지도자 코인을 향한다. 저항의 아이콘이 된 캣니스는 어느 순간 혁명세력 지도부의 선전도구로 사용되며, 독재자 스노우로부터 코인의 의도를 알게 된 상황에서 코인이 공동체의 평화를 해치는 또 다른 독재자가 될 것을 예감한다.

‘동물농장’에서도 농장주 존스의 폭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동물들은 희생의 보상을 누리지 못하고 혁명의 지도자인 나폴레옹이라는 또 다른 독재자를 마주하게 된다. 혁명의 원동력이었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는 표어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로 바뀌게 되며, 동물들은 또다시 불평등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헝거게임은 이러한 동물농장의 결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다른 독재자의 출현을 막으려는 주인공의 결심으로 마무리된다.

1980년대 학생과 시민들의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되찾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불평등의 굴레를 경험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공동체에서 주권은 시민에게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정치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이 공적인 의식을 방기한 채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빈번히 목도한다. 불평등의 존재와 이를 둘러싼 공정의 화두가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지만, 문제해결의 적극적인 주체가 돼야 하는 우리의 위정자들은 이의 해결을 위해 나서기보다는 방관하거나 때로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권력을 ‘이용’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취하기도 한다. 생각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갈등이 제도적인 틀 내에서 얼마나 잘 관리될 수 있느냐에 민주주의 공동체의 성패가 달려 있음에도, 당파적 이익에 따라 위정자들이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는 행태를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19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정치가 액튼 경(Lord Acton)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라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정치권력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그 지지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맹목적인 것이 될 경우에는 권력은 한없이 자유로워지며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토양은 쉽게 훼손된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여전히 우리가 의식적으로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며 이에 무관심하게 될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또 다른 불평등과 억압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다. 탈진실의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는 우리에게 더욱 신중한 판단과 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주권자로서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깊은 사고를 통한 읽기와 쓰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상황이다.

유성진 스크랜튼학부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미국 선거와 정치 참여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본교에 재직하며 한국과 미국의 선거, 여론, 정당정치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Journal of Politics, 한국정치학회보, 국제정치논총 등 다양한 국내외 저널에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대한민국 국회의 형성과 변화’(공저), ‘미국 정치와 동아시아 외교정책’(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