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의 주인공인 미소가 떠돌이 신세인 자신에게 이렇게 살지 말고 결혼해서 나랑 살자는 말을 농담조로 건넨 친구에게 조용히 읊조리는 대사이다. 미소는 가사 노동 도우미로 일하며 받는 일당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청년이다. 조용한 바에서의 위스키 한 잔, 일을 마친 후 피는 담배 한 모금이 그녀의 유일한 행복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월세와 담배 가격이 오르면서 그녀의 일상에 큰 파동이 생긴다. 티끌만 한 일당으로 단칸방 월세를 내는 것조차 버거워지자 그녀는 위스키와 담배를 위해 월세방을 포기하고 기약 없는 방랑 생활을 시작한다. 이런 미소의 선택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한편,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몇 년 새에 천정부지로 올랐고 월세와 전세 보증금도 덩달아 뛰었다. 사회초년생에게 자취라는 두 글자의 무게는 크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려면 월급으로 다달이 빠져나가는 월세와 생활비 등을 감당해야 한다. 계약 기간에 맞춰 1, 2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보부상 생활을 청산하려면 월세를 내는 와중에 내 집 마련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빠듯하게 살아가는 대신, 캥거루족을 자처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모님의 간섭과 잔소리보다 통장에 구멍이 뚫린 듯 빠져나가는 월세가 더 두렵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Z세대에게 부모님의 도움 없이 서울에 내 집 마련이란 사막의 신기루다. 삭막한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디고 아등바등 돈을 벌면 눈앞에 아른거리는 내 집 마련의 허상은 손을 뻗어도 잡힐 듯 잡히지 않을 것만 같다. 

유년 시절에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빈대 가족 탈출기’를 읽고 자란 Z세대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키라처럼 어릴 때부터 저축에 관심을 두고 빈대 가족 탈출기에 나오는 가족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면 적어도 남들만큼 돈을 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공부에 매진하여 누구나 다 인정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직장을 가지고 최소한의 소비만 해서 돈을 모은다면, 내 명의의 집을 장만하고 경제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취업 시장의 상황은 안 좋아지는 추세인 데다가 코로나19가 취업 시장을 강타했다. 낮은 취업률과 높은 실업률은 청년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준다. 세상은 초저금리를 넘어선 제로금리 시대에 진입했고 통장에 돈을 넣어두기만 하면 20~30%의 이자를 주던 과거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예·적금 상품은 티끌만큼의 이자를 제외한다면 원금 손실은 발생하지 않도록 통장에 돈을 묶어 두는 기능을 제공할 뿐이다. 월급 실수령액이 오르지 않는 이상, 예·적금만으로 돈을 부풀리는 데엔 무리가 있다. 

근로소득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고 미래를 건설하기가 어려워진 사회는 청년들이 부가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재테크에 눈을 돌리게 한다. 2030 세대는 근로소득으로 씨드 머니를 마련하여 높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고위험 자산 투자를 찾아 나선다. 주식과 비트코인 시장의 호황은 청년 개미들을 유혹하고 그들은 일확천금의 기회에 눈이 멀어 가치투자가 아닌 투기를 벌이기도 한다. 재테크 시장을 도박장으로 여기는 청년들은 ‘인생은 한강뷰 아니면 한강 물이다’를 외치며 전 재산을 ‘올인’하지만, 베팅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24일 비트코인의 하락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들이 폭증했고 경찰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하락으로 서울 마포대교 인근 순찰을 강화했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그들을 보며 혀를 차기보다는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본질적인 원인을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집 대신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한 미소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미소는 한강 근처에 텐트를 치고 산다. 한강을 기준으로 그 너머엔 고층 빌딩 숲이 있고 한강 바로 앞에 그녀의 텐트가 있다. 그녀가 텐트 속에서 서울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미소는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텐트에 살림을 차리지만, 끝까지 담배와 위스키만큼은 놓지 못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미소와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주거 공간을 포기하는 그녀의 선택은 담배 연기 같은 씁쓸함을 안겨준다. 영화보다 잔인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집과 담배, 위스키 모두를 움켜쥐기 위해 발버둥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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