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 조형예술학부 교수
박일호 조형예술학부 교수

‘읽어야 산다’ 칼럼 의뢰를 받고 많이 망설였다. 우리 학생들이 주로 읽는 대학신문이기에 학생들에게 유익한 책읽기에 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앞섰기 때문이다. 내가 읽는 책 대부분이 주로 전공에 관한 것이라는 점도 걸림돌로 여겨졌다. 글에서 평소 강의를 통해 전했던 내용이 반복될 것 같아서였다.

책읽기가 도움이 된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 같은 책이지만 사람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지 않을까. 책은 우리의 읽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메워주고, 주목하지 않고 스쳐 지나간 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러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 끝에 나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0-1980)의 ‘생산적 읽기’와 ‘텍스트의 즐거움’을 떠올렸다. 독자가 책을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들이 생산될 수 있고, 그에 따른 텍스트의 즐거움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죽음은 독자의 탄생

생산적 읽기로 담론, 삶의 변화 일으켜야

바르트는 프랑스 지성들이 명성을 떨쳤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살았던 기호학자며 문학이론가였다. 그는 단어나 문장의 보편적이고 고정된 의미를 부정한다.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진 기호 혹은 단어(이하 기호로 통일)가 1차적 의미만이 아니라 2차적 의미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라는 단어를 예로 들면, ‘다리가 넷인 개과 동물’이라는 1차적 의미도 있지만 맥락이나 경우에 따라서 ‘성질이 나쁜 사람’ 혹은 ‘충성스러운 사람’ 이란 2차적 의미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모든 기호의 다의성을 주장한다.

바르트는 단어로 이루어지는 텍스트에도 마찬가지 생각을 적용한다. 텍스트는 보편적이고 고정된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이에 더해 작품의 의미를 저자의 의도에 두는 입장에도 반대한다. 이른바 바르트가 말하는 ‘저자의 죽음’인데, 저자와 저자가 창조한 작품이라는 전통적인 저자-작품(author-work) 통합체에서 독자-텍스트(reader-text)로의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저자의 죽음이 독자의 탄생이 됐고, 이제 독자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텍스트 안에서 적극적으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생산적 읽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달리 말해 텍스트로서 작품이 정해진 의미로 고착되지 않고 개방됐다는 뜻이다. 텍스트가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종결됨이 없이 분산되며, 확정된 읽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의 즐거움이 생겨난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즐거움 자체로만 그치지 않는다. 바르트는 ‘생산적 읽기’와 ‘텍스트의 즐거움’이 독자의 역사적‧문화적‧심리적 가정들을 뒤흔들고, 그가 처한 현 상태로부터의 탈피를 가져다주면서 현실 변형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책에 관한 주장이지만, 바르트는 또 다른 기호이며 텍스트이기도 한 시각적 이미지에 관해서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한다. 저서 ‘밝은 방: 사진에 대한 성찰(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에서 생산적 읽기와 텍스트의 즐거움의 관점에서 사진을 다룬다. 사진에서 읽어내는 1차적 의미와 2차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 외의 것은 없을까. 바르트는 사진과 관련된 세 가지 개념에 초점을 맞추면서 설명한다.

첫째는 ‘스투디움’인데, 사진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문화적 영역이나 사진에 담긴 역사성의 재현 등과 관련된 요소들이다. 우리가 사진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설명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인물들이 담긴 초상 사진을 예로 들면, 사진 속 인물이 처한 문화적 환경이나 그 시대 복장 등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의미가 사진의 1차적 의미에 해당한다.

둘째는 ‘푼크툼’으로 바르트가 사진 이미지를 텍스트의 즐거움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부분이다. 사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바탕으로 독자로서 보는 이가 텍스트의 생산적 읽기처럼 사진에 부과하는 2차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위 초상사진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부분이 발견될 때, 즉 사진 속 인물의 비뚤어진 치아나 색다르게 보이는 목걸이 등이 우리를 강하게 끌어들일 때 예측할 수 없는 섬광처럼 2차적 의미가 생산된다.

바르트는 사진의 세 번째 요소로 시간을 말한다. 사진은 이미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으며, 우리 앞에 그것의 현전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진의 대상을 탐색할 때는 과거와의 긴밀한 관계를 염두에 두고 현재로 이어지는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사진의 진정한 미적 경험은 푼크툼과 시간을 통해 보는 이에게 물리적‧심리적 효과를 주고, 현재 상태로부터 탈피하는 담론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고 바르트는 덧붙인다. 책이든 사진 이미지든 그 밖의 어떤 기호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박일호 조형예술학부 교수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광역시립미술관장을 역임했고, 2003년부터 본교에 재직하면서 제 5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현대미술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한국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미학과 미술’(2019), ‘손에 잡히는 서양미술사’(2018), ‘문화와 미술’(2012), ‘예술과 상징 상징형식’(2006), ‘예술의 길 문화의 길’(2005), ‘미술은 언어다’(2002) 등이 있다.

 

키워드

#읽어야산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