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년 전, 고등학생 때의 경험담을 말하고자 한다. 부디 현재 진행형이 아니길 바라며 글을 쓴다. 출신 고등학교에서는 입학생 중 가장 예쁜 여학생 ‘4대천왕’과 가장 못생긴 ‘T(trash)4’를 뽑는 문화가 있었다. 모든 결정은 ‘남기’(남자 기숙사의 줄임말)에서 이뤄진다. 사대천왕 중 일부는 축구부 매니저 제의를 받기도 하는데, 그 역할은 축구부와 기념 촬영 및 30명 가까이 되는 부원들에게 생수를 배달하는 것이었다.

매일 밤 남기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누가 나댄다’, ‘기가 세다’와 같은 마녀사냥에서 나와 내 친구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남학생은 여자 선배에게 ‘누나’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여학생은 남자 선배에게 ‘오빠’라고 사용할 수 없었다. 단어에 애교, 유혹의 요소가 담겨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루는 체육 선생님이 다리가 긴 여학생 둘을 세워놓고 반 친구들에게 누구의 다리가 더 예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중 한 학생의 다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마른 다리가 아닌 근육으로 다져진 게 예쁜 다리’라며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문화는 오래됐고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난 아무런 불편함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화에 와서 알았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대학에선 미션 스쿨이었던 고등학교에서 내내 배웠던 성경 속 여성 혐오를 배웠고, 세계적인 명작에서 어떻게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는지 공부했다. 내 곁의 이화인은 2018년의 ‘Me Too 운동’과 2020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해 연대했다. 입학 후 공동구매로 구입한 스티커엔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문구가 있었다. 페미니즘을 알기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차별적인 요소와 불편함을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며, 종종 주변 사람들은 내게 ‘예민하다’고 한다. 하지만 난 무지해서 편안했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이러한 사실에 씁쓸한 안도감을 느낀다.

최근 세종대 윤지선 교수는 BJ 보겸의 유행어 ‘보이루’라는 단어가 여성 혐오적 표현으로 사용되는 부분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세종대 남학생과 남초 커뮤니티의 회원에게 테러를 당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화라는 울타리가 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인지, 세상이 바뀌긴 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 내 신념을 그저 예민한 여성의 불만으로 치부해버리면 어떡하지. 군대 나온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동의하냐는 면접관의 질문에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더 이상 나를 갉아먹는 그들의 문화와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곧 이화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난 기울어진 세상에서 두 다리 꼿꼿이 세우고 서서 기꺼이 내 자리를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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