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5일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됐다. 2019년 라임자산운용이 편법으로 자금을 굴리다 사실상 파산한 ‘라임사태’ 후, 정보부족으로 인한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겠단 취지다. 금소법의 목적은 금융소비자의 권익 증진과 금융업의 건전한 시장질서 구축이다. 이제 금융회사는 상품을 판매할 때 정보를 충분히 고지하지 않거나 부당한 가입 권유, 기타 불공정 행위 시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금소법이 시행된 후 금융회사의 업무 처리가 대대적으로 늦어졌다고 한다. 일부 은행에서는 몇십 장의 종이로 청약사항을 고지하고, 한 시간 넘게 상품 세부사항을 설명해야 하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때문에 소비자 보호를 위해 시행된 금소법이 불편함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 역시 올 초 카드를 발급받을 때 세부 약관을 보지 않고 휙휙 넘겼던 전적이 있다. 제1조부터 제30조까지를 모두 읽으면서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피곤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약관이나 사용설명서가 재밌을 수는 없겠지만, 왜 우리는 유독 금융상품의 설명을 지루해할까. 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고, 그를 불리거나 관리해줄 수 있는 건 금융상품인데 말이다. 정답은 간단하다. 기초교육으로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은 전적으로 본인의 관심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구조다.

코로나19 이후 투자는 ‘뉴노멀’이 됐다. 예적금만으로는 더 이상 자산증식이 불가하다는 시대적 흐름이 한몫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지난해 5월부터 쭉 0.50%를 유지하는 지금, 초미의 관심사는 단연 주식이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2030의 신규 주식계좌 개설률은 전체의 66.4%였다고 한다. 내 주변만 봐도 삼성전자 주주가 몇 명인가.

하지만 그 전에 낯선 금융용어를 이해하고 투자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빚투족’(빚을 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100만 원으로 1억 벌기’ 같은 콘텐츠가 심심찮게 보이는 것을 보면, 최근의 재테크는 주식투자가 아니라 ‘투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투기와 투자는 다르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매매하는 것은 투기고, 시황을 읽으며 본인 주관하에 매매하는 것이 투자다. 돈을 현명하게 굴린다는 의미의 ‘투자’를 이해하려면 금융과 경제에 대한 기초 지식부터 만들어둬야 한다. 전장에서 칼 없이 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칼 한 자루 쥐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기초 교육 없이 유튜브나 책, 신문으로 금융의 기본부터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는 학교에서 금융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45개 주에서는 부채관리와 소득신고, 세금 보고서 작성법까지 교육한다. 반면 한국의 초중등 교육에서 금융 과목의 비중은 0.1%도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사회나 실과에서 이자나 생애 재무설계와 같은 기초 개념을 스치듯 다루는 게 전부다. 고교로 넘어가서도 경제 수업을 듣기는 힘들다. 경제 과목이 개설돼있는 고교는 약 27%뿐이다.

조선일보와 금융교육학회, 한국교총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학생의 94%가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설문에 응한 학생들은 “어른들도 장시간에 걸쳐 금융 지식을 얻는데 학생들이 1시간 만에 펀드나 예적금 개념을 바로 알 수는 없다”는 의견을 냈다.

학생들과 어른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순간이다. 나를 비롯한 2030은 금융을 채 알아갈 기회도 갖지 못했으면서 ‘알음알음’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왔다. 전 연령대에서 재테크를 생존의 기술로 인식하는 지금, 제대로 된 금융경제 교육이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맡았던 앨런 그린스펀은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에 문맹보다 무섭다”고 말한 바 있다.

금소법도 좋지만, 그 전에 금융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으로써 돕는 것이 우선 아닐까. 교육이라는 주춧돌 없이 금융을 이해할 수는 없다. 다양한 매체에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와도 기초교육이 갖는 상징과 그 보편성은 명확하다. 재테크가 일상이 된 우리네 세대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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