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읽어야 산다’는 논제를 받아들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읽어야 사나?’였다. 독서의 즐거움과 유용성이야 자명한 일이지만, 그게 ‘사는 일’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사람들은 종종 독서를 ‘취미’란에 버젓이 적고 마치 크림이 올라간 고급 커피음료를 마시듯 책을 읽는다. 그걸 생업으로, 혹은 안 먹으면 죽는 식량 같은 ‘필수재’로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낙담하시진 말라. 나는 간단하게 ‘읽어야 산다’는 명제를 증명할 수 있으니까. 가령 약병에 쓰인 용법만 봐도 그렇다. 깨알 같은 글 속에 각종 실험 결과며 예상되는 부작용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마구잡이로 먹었다간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른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독인지 약인지 알 길이 없는 내용의 레이블이 달린 어떤 미지의 약병을 가정해보자. 사람 중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 못지않게 글을 읽고도 뜻을 해독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데, 전자를 ‘문맹’, 후자를 ‘기능적 문맹’이라고 한다. 약병의 레이블을 못 읽는 사람은 ‘문맹’, 깨알 같은 지시사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능적 문맹’에 속한다. 둘 다 미지의 약병 앞에서는 한낱 위태로운 목숨일 뿐이다.

약병을 마주할 필요 없는 대다수의 건강한 사람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메타포로서의 약병은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읽어야 하는 대상은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읽어야 하고, 관계도 읽어야 하며, 조직과 문화도 읽어내야 일상을 무리 없이 영위할 수 있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신호를 읽지 못한다면 바로 충돌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몇 문단짜리 글을 읽고 주제어와 배경을 읽어내는 능력은 원하는 학교의 합격으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SAT의 ‘리딩’ 점수가(수학이 아니라) 높다.

사람을 읽는 능력은 행복한 삶과 직결된다. 행복 이전에 삶이 파탄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나의 만남이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안다면 모르는 약을 독극물인 줄도 모르고 마시듯 주변 사람과 마구잡이로 관계하지 않을 것이다. 조직과 문화를 읽어내는 능력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버티고 커가게 해주는데 절대적이다. 수많은 기호와 상징, 언어와 비언어 신호에 둘러싸인 인간들은 수수께끼 풀 듯 매일 그 기호를 읽어내며 살아가야 한다. 길을 건널 때 신호등의 파란 불을 읽는 것에서부터 고도의 지적인 산물인 언어를 해독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인간들은 읽어야만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읽기가 마치 전투 같지만, 사실 그 치열한 생존의 조건 같은 읽기 속에는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부드럽고 매혹적인 즐거움이 도사리고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튀김처럼, 혹은 육즙이 살아있는 스테이크 한 조각처럼 양분과 에너지는 물론, 황홀한 미각까지 덤으로 선물한다.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나이를 먹다 보니 그동안의 독서가 별자리를 이루듯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지는 뜻밖의 즐거움과 만날 때가 있다. 뭐랄까, 그건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또 입체가 되는, 세포 증식이 가져다주는 생명의 신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과거에 읽었던 책 속의 한 구절이 오늘 읽은 다른 책과 연결되어 갑자기 의미를 더하기도 하고, 오늘 읽는 책의 부족함이 미래의 독서 리스트를 위한 여백을 남기게 한다. 기원전에 써놓은 책에서 어쩌면 한결같은 인간성에 탄복하고, 글마다 숨어있는 인간들의 숨소리를 음악처럼 감상하기도 한다. 언어를 좋아하는 나는 책에서 발견한 단어 하나에도 희열을 느낄 때가 많다.

책 하나는 점에 불과하지만, 그런 점들을 연결하면 놀라운 세상이 열린다. 책 속의 사상을 오늘의 생각과 연결하고, 책 속의 인물을 내가 만나는 사람과 연결하며,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사건 위에 오버랩시켜 보면 평면의 활자들이 입체 그림책처럼 넘실거리며 다가온다. 좀 멋진 말로 독서를 ‘큐레이션’ 하면 자기만의 서재와 자기만의 화랑을 꾸미고 즐길 수 있다.

요즘처럼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는 더욱 책을 선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름난 술도가의 밑술처럼 잘 발효된 책을 밑에 깔고 맑은 물로 술을 담그듯 독서를 하다 보면 평생 책 향에 취해 살 수 있다. 혹은 독서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에 걸맞은 책을 바둑판 위의 포석처럼 단단한 위치에 놓고 집을 짓듯 독서하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자신만의 서재를 완성해 나가야 한다. 그 서재가 바로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책이든 사람이든 세상이든, 당신의 ‘읽기 능력’은 그 서재의 넓이와 깊이가 좌우한다.

박성희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퍼듀대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일보 기자,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언론중재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본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에서 저널리즘과 수사학, 여론 및 정치 커뮤니케이션 등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수사비평’(2017), ‘레토릭’(2016), ‘아규멘테이션’(2014), ‘현대 미디어 인터뷰’(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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