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대학에서 학생들이 교수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미국의 한 기독대학인 Azusa Pacific 대학교에서 학생 대상 설문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설문에서 1위는 학생들은 교수들에게서 삶을 통해 기독신앙의 모범을 보기 원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기독신앙에 대해 강의실에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살아가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또한 학생들도 그러한 삶을 살려 할 때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범대학에서 25년이 넘게 도덕교육을 가르치면서 예비교사들이 가장 알기를 원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아동의 도덕성 발달에서 영향력 있는 교사가 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많은 연구에서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 때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자주 등장하는 연구자 London은 2차 세계대전 중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구한 사람들을 연구하였는데, 그들은 엄격하게 윤리적 원리에 따라 행동했던 부모(혹은 친밀한 다른 인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나도 선생님이 될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대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가끔은 삶을 돌아보며 반성해볼 수는 있지만 매일 강의와 연구에 쫓기며 지내다 보면 마음을 새롭게 하고 행동으로 변화를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내게 이러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생겼다. 몇 해 전 막 은퇴를 앞둔 한 교수님이 몇몇 교수들에게 ‘사회공헌교수회’를 만들어, 봉사활동 사례를 나누는 모임을 갖자 제안을 한 것이었다. ‘진리를 알고 선을 행하여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자’는 이화의 진선미 정신을 삶으로 살아내는 학내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당시 몇몇 대학에서 대학의 사회적 기여를 제고하기 위하여 사회공헌단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고무되어 이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이화여대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하는 10여 명의 교수들이 근처 식당에 모였다.

벌써 이 일은 약 4년 전의 일이 되었다. 사회공헌교수회는 자신의 영역에서 사회봉사를 실천하거나 이화의 정신을 연구와 교육에 녹여내려고 시도해온 교수들의 30여 사례들을 나누었다. 의대 교수님들의 의료선교센터를 통해 이루어지는 저개발국의 의료봉사활동, 캄보디아에 학교와 복지센터를 세우고 교육과 복지를 지원하는 봉사활동, 악기 하나로 무용 재능 하나로 어떤 열악한 곳으로도 달려가서 펼치는 공연 활동, 자폐 디자이너들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활동, 교내 외국인유학생들을 지원하는 활동, 탈북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는 활동, 공학 재능기부 활동 등이 공유되었다.

공유되었던 교수님들의 사례들은 대부분 그분들의 이화에서의 삶 그 자체였다. 그것은 성공담이 아니라 교수로서의 삶의 여정 가운데 있었던 심각한 고민과 갈등의 나눔이었고 무언가를 포기하고 얻는 기쁨이었다. 이 여정들은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동행으로 얻어지는 하나의 열매이기도 하였다. 나도 캄보디아와 중국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제자들과 교육봉사활동에서 울고 웃었던 소중한 기억들을 내 삶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2019년 하반기 사회공헌교수회는 교수들의 사회봉사 사례를 발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진선미의 이화정신의 실현을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고민은 기독대학에서의 교수가 하는 일 전반에서 어떻게 신앙을 녹여낼 수 있을까로 수렴되었다. 미국의 기독대학 Dordt 대학교와 Azusa Pacific 대학에서는 대학설립 정신을 녹여낸 강의안이 개발되어 있었고, 교수를 위한 교육매뉴얼을 제작해 교수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화여대 사회공헌교수회는 이 자료들을 수집하여 검토하였고 한편으로는 일부 교내 조예대, 의대, 경영대, 사범대 교수님들도 자신의 교육현장에서 적용하였던 다양한 시도들을 공유하였다.

또한 국제 기독고등교육자의 네트워크인 INCHE의 대표였던 N. Lantinga 교수를 초청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가 집필중인 책의 아이디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학문한다는 것은 원래 창조주의 창조 세계의 여러 양상을 탐구하는 것이니 결국 탐구의 끝에서는 자연스럽게 신앙을 기반으로 학문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신앙(신념)에 근거한 학문을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신앙(신념)과 학문은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좀 더 진보적인 시각을 제시해주었다. 신앙을 전공 학문에 녹여내려는 우리의 노력에 격려가 되는 아이디어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기독대학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현재 기독대학들은 단지 채플과 필수교양과목을 통해 기독정신을 전달하는 교양교육모델에서 벗어나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는 모델로 나아가고 있다. 신앙과 학문 통합모델이란 전공영역의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영역의 학문과 교육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현해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모델은 졸업생들로 하여금 각 전공영역의 현장에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변혁을 이루어가는 사회실천모델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화여대의 사회공헌교수회는 아직 그 방향성을 탐색 중이다. 이화여대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인 만큼, 위와 같은 기독대학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추어, 말로만이 아닌, 연구, 교육, 행정, 그리고 사회봉사까지 교수의 삶 전 영역에서 어떻게 이화의 기독교 정신을 살아 낼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해나가려고 한다. 이대라는 울타리를 통해 맺어진 교수들이 함께 자신의 가르침을 실제 삶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러한 시도와 노력들이 이화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일로 열매 맺기를 바라며, 이 일이 선행을 내세우는 또 하나의 업적이 되기보다 진심으로 이화의 정신을 실현하고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일이 되도록 지켜봐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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