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원하는 대학만 가면 내 세상이 온통 희망찬 하루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의 문제들이 완벽하게 해결되고, 나는 전공 책이 든 가방을 멘 지성인이 돼 드라마에 나오는 대학생들처럼 그렇게 설레고 가끔은 힘든 나날을 보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만 해야 했던 지난날, 내가 해왔던 모든 노력을 망치고 싶은 어느 날에도 나는 꾹 참아야 했다. 꿈꾸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대학이 마법처럼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예상한 오늘은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자유만 더 누릴 수 있게 되었을 뿐. 그래도 겨우 얻게 된 자유를 열심히 누리고 싶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나름 위안이었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업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손이 느린 나는 현실과 약간 타협한 채 겨우 수강 신청을 마쳤다. 조마조마하고 때론 눈물 나는 어쩌다 환호하게 하는 수강 신청이 끝나면 그렇게 학기는 시작되고 수업과 과제, 아르바이트로 점철된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몰아치는 일들을 겨우 수습하고, 졸린 눈으로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나고 다시 잠들고... 사람들은 이런 걸 ‘일상’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일상이 날마다 반복되고 지루한 거라지만 이건 내가 상상한 대학교 생활이 아니다. 잠깐 힘들고 오랫동안 행복하길 바랐는데, 그 반대라니. 하지만 ‘내가 원했던 일상은 이게 아닌데?’라고 불평할 잠시의 시간조차 사치스럽다. 그런 불평이 나올 만한 순간에도 나는 눈을 붙여야 했다.

똑같은 일의 반복은 시간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내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시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의 잔여만 남아있었다. 지난주가 어제 같고, 어제는 오늘 같다. 일주일이 마치 하루처럼 지나갔다. 분명히 어제 학보사에서 늦은 밤까지 신문을 만들었는데, 눈뜨면 이걸 다시 하고 있다. 그리고 숨 고를 틈도 없이 다음 신문을 만든다. 신문을 만들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면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없다. 이렇게 그나마 남은 시간의 여백을 나는 잠과 아르바이트로 채웠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어떤 문구처럼 나에게 당장 필요한 건 잠재력이 아니라 잠과 재력이었으니까.

학교를 다니며 햇빛만 잔뜩 받은 식물처럼 점점 메말라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은 건 시들시들해진 내 정신과 이를 겨우 지탱하기 위한 체력만 존재하는 내 몸뿐이었다. 나를 끌고 다닐 체력이 남은 것조차 감사해야 했다. 미래를 모른 채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샀던 카메라는 구석에서 제 역할을 잃어가고, 휴대전화는 그저 하나의 알람 기계였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난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타인을 나의 구원자로 삼았다.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장의 힘듦 앞에서 그런 말은 소용이 없었다. 지치고 외로울 때는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맸고, 직접 닿지 못할 때는 메신저나 전화를 통해서라도 공허한 마음을 채웠다. 가뜩이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공백을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채웠고, 달력에는 그렇게 차곡차곡 연결된 시간이 쌓였다.

그러나 타인을 구원자로 삼았던 나는 무너져내렸다.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을 위안으로 삼았던 난 그들이 원하지 않았던 기대를 주고 혼자 실망함을 반복했다.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사람을 소비했고 마음을 닳게 했다. 결국, 지인들과의 약속을 끝낸 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이유 모를 외로움에 눈물 흘렸고, 외로움을 느끼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웠다.

지금은 외로운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아무런 약속도 없는 주말, 느지막이 일어나 침대에 아무런 생각 없이 누워 있다. 겨우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뭘 하고 싶을까.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가고 싶은 공간은 어디인지, 마시고 싶은 커피는 무슨 종류인지를 가만히 고민한다. 그렇게 느릿느릿 나와 대화를 하며 자신을 조금씩 알아간다.

이제 약속들로 가득 찼던 달력에는 군데군데 빈칸이 보인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남겨둔 빈칸이다. 어떤 누구도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라도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게 아닐까?

바쁜 나날 속에서 소소한 외로움이 기다려진다. 무뎌진 나를 다시 세우고 다듬을 수 있는 외로움이 좋다. 오히려 혼자이기에 온전하고 씩씩하고 단정하다. 그러니 혼자인 게 두려운 독자들도 제법 안온한 혼자만의 하루들로 시간의 공백을 채워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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