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식영·16년졸) 푸드콘텐츠 기획자
김나영(식영·16년졸) 푸드콘텐츠 기획자

“무슨 일 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음식과 연관된 다방면의 콘텐츠를 제작하기는 하는데 그 콘텐츠의 범위가 워낙 넓은 탓이다. 간단하게 내가 하고 있거나 해온 일을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레스토랑 PR과 마케팅, 레시피 번역, 국내외 셰프 인터뷰 진행, 영상 제작 디렉팅, 레스토랑 이미지 브랜딩, 음식에 관한 전시 디렉팅, 외주 에디터로 각종 매체를 위한 글쓰기, 외부 콘텐츠 교정 및 교열, 셰프와 기업을 잇는 행사 기획 및 진행, 영화나 드라마의 푸드 스타일링, 책 출간…. 일단 여기까지만 해보자.

정말 많은 일을 한다. 그리고 보통은 이 중에 4개 이상의 일이 동시에 진행된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다. ‘그래서 도대체 뭘 한다는 거야?’ 결국 나는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보다는 역으로 되묻기로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려주세요. 그럼 제가 어디까지 도와드릴 수 있는지 알려드릴게요.”

나는 프리랜서다. 내 회사의 대표인 동시에 유일한 직원이기도 한, 조금 번지르르하게 말하면 ‘1인 사업가’다.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 기획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음식 제품을 홍보하고 싶다는 의뢰가 오면 그 제품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화보를 꾸미고, 사진작가를 섭외해 촬영을 진행하고, 그 제품에 대한 소개문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디자이너를 섭외해 디자인 제작물을 만들거나 다른 셰프를 섭외해 그 제품을 사용하는 쿠킹클래스를 기획하는 등의 일이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자유로운 시간 관리와 이상적인 ‘워라밸’을 기대할 수 있는데, 생각해보자. 앞서 나열한 일들을 다 하면서 충분히 쉬고, 충분히 자고, 여유롭게 커피 한잔하는 일상이 가능할지. 답은 하나다. 불가능하다!

나는 주로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일한다. 요즘은 새롭게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 때문에 한국과 미국, 영국과 홍콩에서 메일과 전화가 날아들고, 거의 매일 마감을 2개씩 쳐낸다.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잠이 깨고, 커피는커녕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눈을 비비며 일을 시작한다. 주로 셰프들과 일을 하는데, 셰프들은 보통 레스토랑 영업이 끝난 이후 연락이 되는 탓에 코로나19 이전에는 늦은 시간에 미팅하는 때도 많았다. 눈을 뜨면 출근이고, 잠들면 퇴근이다. 이런 상황을 수년째 지속하다 보니 ‘워라밸’이라는 용어는 나와 내 주변 프리랜서들의 인생에서 농담할 때 빼고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숨 가쁘게 일하는데 티가 안 난다. 디자이너나 사진, 영상을 다루는 프리랜서와 다르게 콘텐츠를 다루는 프리랜서 특성상 결과물이 내 이름으로 나오지 않는다. 저작권 측면에서 봐도 비슷하다. 보통 디자인이나 사진, 영상 등은 납품이 끝나도 저작권이 제작자 본인에게 있지만, 기획이나 편집 등의 일은 저작권을 따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내 이름을 달고 나오는 외고가 아니고서야 며칠 밤을 새워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해도 그 콘텐츠는 ‘내 것’이 아니고 업체의 것이다. 그럴 땐, 아무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도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각인될 수 없다는 게 못내 서러워질 때가 많다.

언젠가 프리랜서로서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벗’이 있다면 솔직하게는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기는 하다. 사실 추천하고 싶은 삶의 형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알려진 멋진 프리랜서들은 정말 0.01%의 능력치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99.99%의 사람들은 밥 먹듯이 밤을 새우며 다음 달에 일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살아간다. 안정적인 기반도, 기댈 곳도 없는 삶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몇 년 전엔 어쩌다 보니 여러 업체의 입금이 줄줄이 밀려 수중에 단돈 6만 원밖에 남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통장에 찍힌 다섯 자리 숫자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건강 해치며 일했는데 내게 남은 것이 십만 원도 안 된다는 사실에. 자존심 때문에 부모님한테도 손 벌리지 못하고 하루하루 불안하게 지내야 했던 기억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프리랜서로 산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아서가 아니라, 수많은 단점을 압도하는 몇 개의 장점을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에 있어 나의 선택과 결정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매력적이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 생각을 하면 무엇이든 해내게 된다.

꼭 하고 싶던 일을, 꼭 함께하고 싶던 사람과 하는 행운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요즘은 국내 여성 셰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고 있다. 좋아하고 존경했던 여성 셰프들을 인터뷰했고, 지금은 한창 마감을 하며 글로 엮어내는 중이다. 이 책은 누군가의 의뢰가 아닌 온전한 나의 일이다. 세상이 내게 일을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판을 짜서 만든 나의 기회다. 그래서 내게 프리랜서란 기회와 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프리랜서의 기쁨이고, 여전히 프리랜서로 사는 가장 큰 이유다.

5년 전 푸드 매거진 에디터로 갓 입사했을 때 이런 글을 썼다. ‘힘든 순간이 오겠지만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할 것이다. 언제나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이름을 소개할 수 있는 멋진 에디터가 되기 위해서.’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나는 변함없이 이 일을 사랑한다. 이젠 에디터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도 없고, 퇴직금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없어도, 나는 전보다 더 당당하게 나를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안녕하세요, 김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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