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 집이라고 한다면, 그 집 앞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다. 오늘은 이 신학의 정원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기독교 신학에는 크게 정통주의, 자유주의, 급진주의의 집이 있다. 그에 딸린 정원도 각각 존재한다. 정원의 모습은 그 집주인의 모습을 반영하기에 각 집 정원사들의 특징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신교 신학에서 제일 오래된 집은 정통주의이다. 정통주의 신학은 가지 넝쿨이 얽힌 옛 중세시대 수도원 같은 오래된 건물과 다양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가지고 있다. 이 집은 꽃 종자나 식물에 대해 잘 아는 집주인이 절대적으로 집 앞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집주인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넝쿨을 집주인이 유지하고 싶다면 군말 없이 넝쿨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넝쿨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넝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배척이 강한 성격을 보이기에 정통주의 신학의 정원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정원의 모태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무조건 이 정원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만약 누군가 그 정원에 대해서 함부로 품평한다면, 그 사람은 마을에서 배척받는다. 배척의 근거와 정당성은 정통주의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죄목’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집 정원에는 잡초가 있어선 안 된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정원을 유지하는 데 잡초는 정원의 근본을 망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잡초 제거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유주의 신학의 정원을 가진 집주인의 정원은 프랑스 루이 14세의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집의 정원은 대칭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사람들이 매해 찾아와 사진을 찍을 만큼 많은 대중에게 공감을 받는다.

그러나 이 정원에도 독이 될 수 있는 잡초가 있어서는 안된다. 전체의 균형과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정원을 정연하게 만드는 데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다른 동네의 정원에 대해서 도움을 주기가 힘들다. 자유주의 각지고 좌우 대칭이 아닌 정원은 정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통주의식 정원과 자유주의식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어간다. 매년 새로운 꽃을 심어야 하기에 종자를 사고 분뇨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정원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은 해방신학의 집을 짓는다.

해방신학의 정원은 잡초와 들꽃으로 가득한 네이처다. ‘Nature’ 즉,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해방신학의 정원사들은 잡초와 들꽃으로 아름다운 꽃다발을 만든다. 잡초를 무성히 기른다면 집이 망가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잡초를 함께 가꾸면서 자연 그대로의 것으로부터도 충분히 만족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누릴 수 있는 집이 해방신학이다. 이 집에서는 잡초를 포함한 모든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이 그 자체로 존중받고 함께 공존한다.

각각의 정원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 공존한다. 유서 깊고 전통 있는 정통주의 신학의 정원에 살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질서 정연하고 대중적인 정원에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자연 그대로 난 것들의 조화를 놔두고 그로부터도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정원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한 정원이 좋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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