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교수님은 진로를 어떻게 선택하셨어요?”다. 학생들이 각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분들을 만난다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을 적어 보려 한다.

미생물학 전공자로서 최초의 진로 선택은 ‘대학원 진학이냐 취업이냐’였다. 학부 졸업생으로서 대기업에 사무직으로 취업을 하는 길이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를 부지런히 해야 했다. 요새 말하는 소위 스펙을 쌓아야 했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나는 이런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였다.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과 분위기 덕분에 비자발적이지만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기억은 ‘대학원에 진학하면 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 학위 후에 밥이나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학비와 연구 장려금을 받으면서 대학원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는 지원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학비와 생활비 지원을 받기 어려웠으니 대학원생들이 느끼는 경제적 부담감도 상당했다. 내가 장학제도가 잘 갖춰진 포항공대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것에는 이러한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후에는 세부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생명과학분야의 대학원 교육은 각 실험실에 소속되어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므로, 세부 전공과 지도교수 선택은 대학원 진학 결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했다. 내가 선택한 전공은 “생체 고분자의 3차 구조를 규명”하는 구조생물학이었는데, 당시에 이 분야는 국내 연구 기반이 거의 없었고 전공 교수님들도 전국적으로 5명 이내였다. 국내 과학계에서 대세가 아닌 마이너 분야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도 교수님은 당시에 초임이셨다.

즉 나는 마이너 분야 신생 실험실의 첫 번째 대학원생이었다. 유행하는 분야의 크고 유명한 실험실로 진학한 친구들을 만날 때는 내 선택에 대해 의심을 갖기도 했었다. 손익을 계산하고 전략적 선택을 했다면 다른 대세 분야 전공과 유명한 교수님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결과론적이지만 단지 내 마음의 끌림을 따라 내렸던 순진한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불과 몇 년 후 구조생물학은 국내에서 대표적인 생명과학 분야로 부각되었고, 우리 실험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성과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였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러한 선택의 결과를 통해 각자 자기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선택을 할까?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선택을 할 때 내가 되새기는 말이 있다. “유행하는 최신의 옷이 아니어도 좋다! 오래된 옷이라도 내게 어울리면 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이목에 신경 쓰기보다는 내 마음이 끌리고 적성에 맞는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내 의지로 뭔가를 선택할 수 있을 때는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의지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특정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후 포항가속기연구소에 취직을 한 경우이다. 당시에는 박사학위를 받으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박사후 연수과정을 가는 것이 정석이었다. 이 과정을 거쳐야 향후 국내 과학계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상식이었다. 같은 전공의 동료들과 선후배들이 막스 플랑크, 하버드, 스탠포드, 존스 홉킨스, UC 버클리 등으로 박사 후 연수과정을 나가는 것을 보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남들 다 가는 국외연수를 못 가고 취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매달려 봐야 변하는 것은 없기에 내게 주어진 선택을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구조생물학자라면 반드시 포항가속기연구소에 방문하여 실험을 해야 한다. 전국에서 오는 대학원생들로부터 각 연구실의 실험 노하우를 들을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과의 대화는 전공 분야에 대한 내 지식에 깊이와 넓이를 더해 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독립된 구조생물학자로서 누구보다도 빨리 인정받을 수 있었고 주목받는 연구성과도 발표할 수 있었다. 또한, 높은 임금을 받아 경제적 어려움도 일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의 5년은 내가 과학자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빨리 안정을 찾는데 밑거름이 된 시기였다. 그 덕분에 나는 현재 이화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선택을 하기 전에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려고 한다. 그러나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족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선택의 유불리를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플랜B가 더 큰 만족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것이다.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보다 내 마음이 끌리는 혹은 어쩔 수 없이 내게 온 선택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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