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A strong desire to wander or travel and explore the world.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어 단어다. 한국어로는 흔히 ‘역마살’이라고도 번역이 되는데 어감이 조금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팔자라기보단 넓고 다양한 세상에 대한 감사와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가깝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단어는 1년 반, 정확히는 500일의 독일 생활 끝에 깨달은 말이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그리고 전반적으로 지니는 생각은 참 달랐다. 전혀 다른 일상과 생각은 내 시야를 확장했다.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은 색깔이 참 뚜렷했다. 각자만의 뚜렷함이 다양성을 만들었다. 강의실에는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가 앉아있었고 테크노 클럽에는 40대 부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으로 맞춰 입고 음악을 들으러 왔다. 주중에는 수트만 입는 대기업 직장인이 주말에는 스트립 댄서가 됐다. 학생, 직장인, 부모로서의 삶과 개인의 삶은 명확히 구분됐고, 그 자체로 존중받았다.

천차만별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나는 자주 좌절했다. 선명한 무지개 빛깔 사이 회색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색깔이 아닌 나를 감싸는 공동체의 색깔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일상을 ‘나답게’ 채워나가며 살아갈 때, 나는 그럴 겨를도 없이 일상을 정해진 틀 안에 애써 끼워 맞추느라 참 쉽게도 무너졌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 참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이 나의 색깔을 만든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알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 방황은 필연적이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한 시도와 실패를 거쳐야 하고, 그것을 기다릴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도 강한 색깔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방황의 시간을 거쳤고 방황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의지로 느리게, 돌아서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유유히’ 걸어간다는 말이 있다.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사회에서 한가하고 여유롭게 느릿느릿 걸어갈 중요성을 발견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나에게 주기 위해서다.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깨닫게 된다.

가보지 않고, 해보지 않고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방황이란 워딩의 어감을 용감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방황과 여유라는 사뭇 다른 두 단어가 어쩌면 내겐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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