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 취미란에 독서, 음악 감상 따위를 적어냈다.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인 취미였다. 실제로 그것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솔직히 딱히 쓸 만한 취미가 없어 적어낸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여가 시간이 늘어나며 어떻게 하면 남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자연스레 취미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돈을 내고 취미를 배울 수 있는 ‘클래스 101’과 취미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남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알차게 보내려는 한국인의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모습이다.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지라, 기왕이면 남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휴학한 김에 멋진 취미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내게 “혹시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을 때, 조금은 멋있어 보이는 취미로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사실 남는 시간에 하는 건 넷플릭스, 웹툰, 스마트폰이지만 이것들은 뭔가 ‘멋진’ 취미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멋져 보이는 취미 찾기를 시작했다. 먼저 그림 그리기에 도전했다. 스케치북을 사서 그려봤는데 원체 그림을 못 그리는 손을 가진지라 상상한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하니 괜히 짜증만 났다. 마침 유튜브에서 ‘금손’들의 그림을 본 후라 내 그림은 더 초라해보였다. 마음만 상해 이를 취미로 만드는 것은 포기하고, 악기에 도전했다. 다행히 악기 연주에는 소질이 있어 최근엔 피아노를 자주 친다. 과거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시절, 연습 한 번에 과일을 두 번씩 칠한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피아노 학원에 한 번이라도 다녀본 사람이라면 과일이 그려져 있는 연습장을 알 거다) 그땐 그렇게 치기 싫던 피아노가 요샌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월간 디자인’ 잡지도 구독했다. 나름 큰맘 먹고 1년 구독을 했고, 아직은 꽤 열심히 읽고 있다. 디지털로는 충족되지 않는 아날로그적인 종이의 질감과 잉크 냄새가 좋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조금 더 활동적인 취미도 가져볼까 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왜 취미생활을 하는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역사가 하위징아가 제창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는 용어가 취미생활을 원하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할지도 모른다. 멋들어진 취미를 만드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취미가 있어야만 하는, 취미 강박의 아이러니를 느끼곤 한다. 생활기록부 혹은 자기소개서의 취미란을 채우기 위해, 혹은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없는 취미도 만들어 내야 할 판이다. 취미가 없으면 좀 어떤가. 그리고 멋있지 않은 취미면 또 어떤가. 내가 즐거우면 그만인 것을. 애초에 취미의 사전적 정의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다. 취미 열풍은 자기 계발의 연장선 같기도 하다. 사회는 우리에게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취미가 없는 사람은 무색의, 개성이 없는 사람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무색은 좋지 않은 걸까? 오히려 어디에나 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어쩌다 취미생활에서 인간의 유일성에 대한 고찰로 생각이 뻗어버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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