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등교부터 하교까지 녹음기를 차고 있었어요.”

4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ㄱ(섬예)씨의 기억은 또렷하다. 상처를 안고 자란 학교 폭력(학폭) 피해자들은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고통받는다.

최근 유명인들에 대한 학폭 피해자들의 연이은 고발에 관심이 뜨겁다. 프로 배구 선수 자매의 학폭 가해 사실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폭로된 것을 시작으로 한 달째 학폭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학폭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의 영향에 대한 논의도 나온다.

 

성인 돼도 따라오는 학폭 트라우마

ㄱ씨는 중학교 3학년 1년 간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 다툼이 생겼고, 그 중 한 명이 ㄱ씨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렸다. 소문을 시작으로 전교생이 ㄱ씨를 외면했다. 가해학생들은 무차별적인 욕설로 ㄱ씨를 괴롭혔다. ㄱ씨는 항상 녹음기를 갖고 다녀야 했다.

상황은 ㄱ씨가 등교 중지를 하며 멈췄지만, 학폭의 그림자는 자꾸만 그를 따라다녔다. ㄱ씨는 “중학교 학폭 경험 이후 전반적인 인간관계 형성에 장애가 생겼다”며 “고등학교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혼자 관계를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시간이 많아 대학에서도 사람을 만날때 걱정이 앞선다”고 전했다. ㄱ씨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에서도 학폭 피해자들의 심리 치료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생기길 바라고 있다.

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학교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초중고등학교 학생 100명중 1명은 학교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학교 폭력 피해 사례는 계속 증가했다.

 

 

학폭 트라우마, 대학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

ㄴ(융콘)씨도 학창 시절 학폭 피해를 입은 기억에 아직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1학년, 2년의 학교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가해자들은 같은 반 학생이었다. 주로 언어폭력으로 ㄴ씨를 괴롭혔지만, ㄴ씨가 화가 난 것 같으면 갑자기 사과하는 등 교묘한 방법으로 따돌렸다.

가해 학생은 ㄴ씨에게 “공부만 잘하면 다냐, 인성이 좋아야지”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 ㄴ씨가 선행상을 받았을 때 “너는 악행상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등의 폭언을 내뱉었다.

이런 피해 경험은 환경이 바뀔 때마다 그에게 부담을 줬다. ㄴ씨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검열하게 됐다.

 

학폭 예방 및 치료, 대학도 함께해야

청소년기 경험한 학폭은 그 트라우마로 인해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학교 폭력 피해 경험이 사회불안에 미치는 영향: 거부 민감성의 매개효과’ (지하영, 2020)에 따르면 학폭 피해자들은 타인과 상호 작용 중에 생길 수 있는 ‘거부 민감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거부 민감성이란 대인 관계에 있어 거절에 대한 걱정으로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성향을 의미한다.

이승연 교수(심리학과)도 의견을 같이했다. 이 교수는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경험한 피해자는 주변 사람들의 거부 신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타인에게 거부당하는 상황인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의 안 좋은 기억으로 이를 실제보다 부정적이고 적대적으로 해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성인이 돼서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대학에서의 
학교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성인이 돼서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대학에서의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교수는 대학 내에서도 피해자들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풀어가며 자신이 겪은 사건의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긍정적 측면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학 내 학폭 예방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대학교는 중고등학교와 달리 학생들이 한 공간에서 오래 함께 지내지 않아 오히려 사이버 공간에서 폭력이 더 빈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이버 폭력에 대한 예방 및 대처 교육도 본교생 전체를 대상으로 공유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학생처 학생상담센터(상담센터) 오혜영 소장 역시 “청소년기 학폭 피해 경험은 복합적인 트라우마 증상을 보일 수 있다”며 “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대인관계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학 내 다양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교는 상담센터를 통해 청소년기 학폭 트라우마 경험에 대한 신입생 특성 조사를 실시한다. 조사를 통해 학폭 트라우마의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지속적 상담을 통해 회복을 돕는다. 상담센터에 개인적으로 상담을 신청할 수도 있다. 학폭 트라우마로 본교 상담센터를 찾은 ㄷ씨는 “고등학교 시절 왕따 경험으로 자기 검열과 강박이 생겼는데 상담 이후 이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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