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서울지역 고교 과학교사(과교·18년졸)
정희원 서울지역 고교 과학교사(과교·18년졸)

책상 앞에 붙어 있던 ‘희원아! 복도 길만 걷자!’라는 문구. 3번의 임용 도전. 2020년 2월 드디어 합격. 그리고 터진 코로나19.

교사로서 해야만 했던 일들이 많았고, 분명히 하긴 했는데 완성한 일은 없었다. 수업, 학급 경영, 행정 업무 등 그 어떤 것도 완벽하지 못 했던 것 같다. 후회와 반성이 잔뜩 들어간 글이 될 것 같아 몇 번씩 쓰고 지웠으나, 후회나 반성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마음을 비우고 초임 교사의 지난 1년간의 생활을 적어나가 보려 한다.

2020년 4월 16일, 몇 번의 등교 개학 연기 끝에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학기라면 같은 반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도 남았을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손소독제를 쓰고 발열 체크를 한 뒤 교실에 앉아 서로 눈치만 봤다.

첫 담임 반, 첫 제자들과의 첫 만남은 임용 공부를 하며 늘 꿈꿔왔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활기찰 수 없었고 간소하게 이뤄져야 했다. 감염 위험 탓에 오리엔테이션을 간단히 진행하고 필요한 파일만을 배부한 후 바로 귀가시켰다. 이후 정부 지침에 따라 고등학교 3학년은 쭉 등교했고, 1학년과 2학년은 격주로 번갈아 등교를 했다.

 

임용 산 넘으니 코로나19

악전고투했던 교직 첫해

학생들이 집에서 수업을 들을 때는 하루에 돌린 전화만 50통이 넘는다. “OO아. 일어나서 출석 체크해야지”, “집에 전기가 나가서 수업을 다 못 들을 것 같다고? 선생님이 담당 교과 선생님들한테 연락드려 놓을게” 등. 학생들이 등교했을 때는 단체 생활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만한 말들을 쉬는 시간마다 돌아다니며 말했다. “서로 1미터 간격 두고 걸으세요.”, “쉬는 시간에 모여서 얘기하지 마세요.”, “밥 먹었으면 마스크 바로 착용합니다.”, “서로 손잡거나 안으면 안 돼요.”

학생 상담은 대부분 전화 통화로 진행했다. 대면 상담보다 솔직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영상 통화로 방법을 바꿨다. 학교 규정상 오후8시 이후에는 퇴근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영상 통화를 한 적도 있다. 한 학부모가 “선생님들이 별걸 다 한다”고 했다. 상담은 별 게 아닌데, 영상 통화 상담이 되면서 별 게 되어버렸다.

수업도 마찬가지다.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이 ‘별 게’ 되어버렸다. 수업하는 걸 촬영하고, 자막을 다는 등 동영상을 편집하고. 모두 처음 하는 것들이었다. 동영상 찍는 법, 편집하는 법에 관한 연수를 듣고 오픈채팅방에 참가하며 부지런히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다.

부임 초기, 선배 교사가 말했다. “교사 일 중에 가르치는 업무 비율이 한 20% 되려나. 담임 맡으면 한 40% 정도? 나머지는 다 행정 업무라고 생각하면 돼.”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교사는 가르치는 직업인데 그게 20%밖에 안 된다는 말은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임용시험 공부 과정에서 알려주지 않는 행정 업무가 수업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코로나 시국이어서 이렇게 처리해야 할 문서가 많은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건지 0년차인 나는 알 길이 없으니 그냥 업무 무덤에서 휩쓸려 다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해치우듯 보내던 날 원격 수업 Q&A 방에 질문이 올라왔다. ‘선생님, 생물대멸종 설명하실 때 뒤쪽 설명이 잘린 것 같아요’라는 내용이었다. 너무 바빠서 검토를 못 한 채 바로 올린 영상인데, 편집에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온종일 부끄러웠다. 교사는 가르치는 직업인데, 그게 가장 중요한 건데, 가장 중요한 것을 뒷전으로 한 채 난 지금 무얼 하고 있고, 코로나 시국이라는 것을 변명 삼아 근무 태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173일 수업 일수 중 103일이 원격 수업이었다. 아이들을 본 날짜가 70일밖에 되지 않는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을 뺀다면 아이들을 눈앞에 두고 수업을 한 날짜가 약 50일밖에 되지 않는다.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2020년에 무엇을 한지 모르겠다는 학생들, 다시 1학년 하고 싶다는 친구들, 자신의 열일곱 살이 망가진 것 같다는 말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느 날 우리 반 학생들이 교사 급식실로 들어와서 밥 먹는 내 얼굴을 빼꼼히 본 적이 있다. 청소 시간에 지도하러 올라가니 학생들이 “선생님 얼굴 아까 처음 봤어요”라는 말을 했다. 담임 얼굴을 알고 싶은데 볼 수가 없으니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는 급식실에 찾아온 것이다. 그때가 11월이었다.

교사 생활 첫해에 맞이한 코로나19. 실수와 실패가 반복되는 가운데에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교사의 일을 온전히 다 해낼 수 없었다. 2020년 교직 첫 해, 나는 소를 잃었다. 그리고 지금 그날들을 후회하고 반성한다. 내가 교직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되새기며 어설프게라도 외양간을 고치고 있다. 더디지만 동영상 편집 실력도 늘고 있고 모바일 토론 주소들도 여러 개 꿰고 있다. 또 원격 수업을 듣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살살 달랠 수 있는 당근 몇 개도 알고 있다. 모두가 어설픈 지금, 외양간이라도 열심히 고치면 집 나간 소가 돌아오겠지!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새 학기를 보낸다.

정희원 서울지역 고교 과학교사(과교·18년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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