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단짠' 철학서와 그림책 사이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철학·94년졸)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철학·94년졸)

나의 첫 번째 책방은 동네 시장 어귀에 있었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주인공 바스티안이 비 내리는 날의 고서점에 들어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처럼 그 작은 책방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만나고 마해송을 만났다. 두 번째 책방은 종로서적이다. 시내 안경점에 다녀올 때면 그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스킵 플로어로 되어 있는 건물 전체가 경이로웠다. 화집과 악보집의 세계를 여기서 알았다. 책을 사면 직원이 표지를 싸주었는데 다갈색 로고가 인쇄된 포장 종이를 날렵하게 책등 사이에 접어 넣고 침착하게 모서리를 다듬던 손끝이 생각난다. 철학과에 들어갔다고 외삼촌이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선물해준 것도 그곳이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정문 앞 서점 다락방, 신촌 홍익문고, 후문 건너 초방책방을 닳도록 다녔고 교보문고의 광활한 서가에 틀어박혀 하루를 꼬박 보낸 적도 많다. 그러다가 그림책과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90년대는 세계 걸작 그림책이 정식 번역되면서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고 역량이 뛰어난 국내 작가가 속속 등장하던 때다.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황금 같은 시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대학 도서관에는 그림책이 상당히 많았다. 희귀한 외서 그림책도 적지 않게 소장돼 있었다. 철학서가 분류체계상 100번대에 있는데 그림책은 000번으로 시작하는 총류에 있어서 서가가 서로 가깝다. 철학책을 읽으러 갔다가 철학책은 한 권도 못 읽고 그림책만 들여다보다가 나오기도 했다.

그림책이 출판기술과 결합된 놀라운 예술 매체라는 것을 그 무렵에 깨달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전공학문인 철학에 대한 의욕이 높아졌던 일이다.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두 영역을 가로지른 경험은 감각에 지문처럼 새겨졌고 나는 그림책과 동화를 철학적으로 연구하고 비평하는 사람이 되었다. 책이 이어준 트라이앵글이 직업이 된 것이다.

 

그림책을 중심으로 영역 가로지르는 독서

전혀 다른 책들이 하나의 의미 속에 합류한다

일반적으로 철학은 어른의 학문이고 그림책은 어린이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틀렸고 내게는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내가 할 일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어린이의 존재와 사유를 독립적으로 존중하는 것을 철학에서 배웠고 어린이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시선을 철학적 탐구에 적용하는 법을 그림책에서 배웠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끼리는 동기화의 기능이 있어서 접속 경로만 찾아내면 그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내게는 철학과 그림책이 그랬다.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30대 초반 몇 년간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중 참전하여 이탈리아군의 포로가 되었고 29세가 될 때까지 몽테 카지노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그 수용소 안에서 ‘논리철학논고’의 원고를 완성했고 이 원고를 버트란트 러셀에게 보내고 난 뒤 교육학을 공부하고 학교 선생님이 된 것이다. 그 무렵 비트겐슈타인은 세상 사람들을 존경할 수 없어서 매우 불행했고 자살마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일한 즐거움은 어린이들에게 그림책과 동화를 읽어주는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무기력에서 빠져나올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철학자들의 글과 그림책을 오가며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철학서는 글 텍스트 중에서도 논리 전개가 신중하고 정교한 책이다. 그림책은 이미지 텍스트의 모호한 경계를 자산으로 이야기를 풍부하게 늘려가는 책이다. 철학책 안에는 대부분 그림이 없고 그림책 안에는 글이 하나도 없을 때도 있다. 이 둘은 ‘단짠단짠’처럼 잘 어울린다. 철학이 쌓아온 문자 문화의 침착함과 그림책이 누려온 구술 문화의 활달함이 상호작용하면서 갑갑했던 현실의 실마리가 풀릴 때가 있다.

그림책을 다리로 삼아 영역을 가로지르며 변주하고 합주하는 독서는 여러 방향으로 가능하다. 지난 2020년 가을에 나는 그림책 작가 시드니 스미스와 시인 조던 스코트가 함께 만든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책읽는곰, 2021)를 번역하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연이어 떠오른 책은 정용준 작가의 신작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민음사, 2020)였다. 두 권의 책은 말하기를 유창함이 아닌 다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누구도 내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지만 계속 말했다”는 소설의 주인공과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라고 말하는 그림책의 주인공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한 사람이 두 권의 책이 되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읽은 책은 송은혜의 ‘음악의 언어’(시간의 흐름, 2021)였다. 그 책이 말하는 “흐르는 시간에서 음표를 건져 올리는 법”과 그림책에 나오는 “강물처럼 말하기”는 닿아있었고 “노래하는 횡경막”과 “목구멍에서 우는 까마귀”는 몸과 소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세 권의 책은 전혀 다른 서가에 있지만 하나의 의미 안에서 합류한다.

수많은 책과 책 사이에서 더 많은 변주와 합주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책 속에 길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본교 철학과를 1994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심리철학과 철학교육을 공부했다.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바람 속 바람’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그림책과 아동청소년문학을 연구하며 평론과 서평을 쓰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론집 ‘거짓말하는 어른’, ‘어린이 세 번째 사람’을 출간했고 함께 쓴 책으로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 등이 있다.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괜찮을 거야’, ‘홀라홀라 추추추’ 등을 번역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