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행정·17년졸) 네이버 CS기획
김혜선(행정·17년졸) 네이버 CS기획

“혜선님, 금번 프로모션 페이지 PC, 모바일 한 벌 반응형 웹으로 기획서 정리해 주시고요. 이번 달 25일에는 페이지 오픈해야 하니까 디자인, 마크업, 개발 리소스랑 일정 가능한지 빠르게 체크해 주세요.”

생경한 IT 용어들과 함께 험난한 회사 생활의 서막이 올랐다. 위와 같은 업무 요청을 받았을 때 진땀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이벤트라고는 참여만 해봤지, 기획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내가 프로모션 페이지 기획이라니. 유저로서 신나게 이벤트에 참여할 때와는 다르게 기획할 때는 고려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이용자가 프로모션 페이지에 접속할 때 현재 네이버 로그인 상태인지, 비(非)로그인 상태인지, 서비스에는 가입이 돼 있는지, 이벤트 최초 참여자인지, 중복으로 여러 번 참여했는지 등등. 여러 변수를 고려하고 그에 따라 노출되는 팝업이나 랜딩 페이지(검색 엔진, 광고 등을 경유해 접속하는 이용자가 최초로 보게 되는 웹페이지)의 구성을 다르게 해야 한다. 머리를 굴려 가며 기획서의 구색을 갖춘 뒤에는 디자인, 마크업, 개발 쪽의 각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정해진 배포 날짜를 맞추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해야 한다.

당시엔 프로모션 참여를 유도하는 배너 기획까지 맡았다. 네이버 메인 내 타임보드, 롤링보드, 주제판 영역 등 ‘DA’(Display Advertisement) 영역에 노출될 배너 문구를 무엇이라 정할지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또 세부적인 디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이미지 구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다. 여담이지만, 내가 기획한 배너가 메인에 처음 걸렸던 날에는 신기한 마음에 캡처를 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낮은 클릭률을 보며 ‘좀 더 좋은 문구를 넣어볼걸’ 하는 아쉬움과 숙제는 항상 남았다.

좌절의 시간도 잠시, 오픈 이후에는 이용자 동향을 잘 살펴봐야 한다. 만약 QA(서비스 검수) 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오류가 오픈 후에 발생한다면 핫픽스(오류 수정이나 성능 향상을 위해 배포되는 긴급 패치)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당첨자 발표를 진행하고, 혜택으로 내걸었던 페이 포인트 적립을 일정에 맞춰 무사히 마치고 나면,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다. 그동안 내가 클릭 몇 번으로 아무 생각 없이 참여했던 이벤트들의 이면에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수많은 담당자의 노고가 숨어있음을 그제야 알았더랬다.

그렇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과 야근의 연속. 그리고 집-회사-집-회사로 귀결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고민에 빠졌다. 20대 후반 정말 지독한 마음의 방황기를 보냈다. 이 거대한 IT 정글에서 나의 길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헤매며 갈피를 못 잡던 작년 7월, 팀 이동으로 CS 기획이라는 새로운 업무 영역을 맞닥뜨리고 다시 ‘네린이’(네이버+어린이)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는 ‘CS’(Customer Satisfaction 혹은 Customer Service)라는 용어를 들으면 으레 콜센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최근 CS 트렌드는 콜, 메일 등 상담원을 통한 휴먼 대응보다는 AI 챗봇을 전면에 내세운 자동 대응에 포커스를 두는 것이 특징이다. 영업시간 외에 즉각적으로 대응이 가능한 것도 챗봇의 뛰어난 장점으로 꼽히는데, 특히 최근 코로나19가 장기화함에 따라 많은 기업의 챗봇 도입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내가 속한 팀에서는 이용자 셀프 처리율을 높이기 위한 챗봇 시나리오 고도화 및 DB 구축, 신규 고객접점채널 기획, 고객센터 웹 페이지 구성, 서비스 오픈 및 종료 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CS 정책 수립, 이용자 문의 분석 등 네이버 고객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기획 업무를 수행한다.

또한 네이버의 여러 서비스에서 기능 및 정책에 대한 변경사항이 있을 때 이용자에게 배포하기 전 최종적인 CS 영향도 검토한다. 어딜 가나 중간 다리 역할이 참으로 어렵다. 단순히 이용자 입장만 고려하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서비스 운영의 입장에서만 생각해도 안 되는, 사용성과 운영성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기 위해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고 협업해야 하며 때로는 장벽에 가로막히기도 한다.

회사생활이란 게 참 녹록지 않다. 올해 4년 차 직장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회사생활이 어렵다. 이화에 재학할 당시 학보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뻔뻔하게 카메라를 들이밀던 경험에 나름의 사회생활 담력이 쌓였다고 생각했지만, 웬걸, 회사에서는 메신저로 업무 관련 문장 하나 쓰는데도 엄청난 인고의 시간이 들어간다.

최근 팀 동료 한 분이 10년 근속 기념일을 맞이했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리며 문득 나는 ‘IT 정글인 이곳에서 10년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테지만, 직장생활 바이블이라 불리는 드라마 ‘미생’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기는 버티는 데가 이기는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완생’으로 나아갈 그 날을 기다리며 회사에서 잘 버텨주고 있는 수많은 이화 동문들과 나에게 오늘도 참 수고 많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김혜선(행정·17년졸) 네이버 CS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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