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력의 윗장을 걷어낸다. 날짜를 보니 어느덧 2월26일이다. 개강일이 한 주도 채 남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네 번째로 맞는 봄엔 설렘보단 권태가 먼저 느껴지지만, 이번 마감을 준비하며 읽어본 개강호엔 두근거림이 가득하더라.

슬프게도 나의 첫 개강은 퍽 싱거웠다. 수강신청 ‘올클’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망한 수강신청도 바로 그때였고, 공부가 하기 싫다는 핑계로 수업시간 내내 딴짓만 하던 것도 새내기 때였다. 고등학생 내내 염원하며 들어왔던 전공은 기대와 너무 달랐고, 간신히 한 자리를 얻은 교양은 내 흥미와 몇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뒷자리에서 고개를 꾸벅이다가 사람들의 말소리에 깬 적이 몇 번이었던가. 아마 친구가 깨워주지 않았다면 그 강의실에서 계속 잠들었을 것이다.

SNS에선 공연을 준비하거나 동아리에서 만난 인연들과 술 한 잔을 기울이던데, 어쩐지 난 잉여계단에서 하품하며 나온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하루가 아쉬운 그들에 비해 나의 24시간은 너무 길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빼면 정기적인 외출도 없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핸드폰을 붙들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삶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기에 맘 놓을 틈도 없었다. 대학생이라면 으레 할 법한 것들도 나와는 연이 없는 것 같았다. 신나게 놀았던 날에도 기숙사 언덕을 올라갈 때면 이유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누군가 “스무 살이 제일 혼란스럽더라”고 말해줬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나를 몰랐기 때문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그때, 난 내가 열정과 의욕을 모조리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지원하거나 발을 디딜 여력도 없었다. 실은 떨어졌을 때 상처받기 싫은 것이면서 말이다. 현실감각이 없다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날만 늘어갔다. 7학기에 접어든 지금, 내가 회상하는 가장 길고 지루했던 학기는 그런 모습이었다.

바꿔 말하면 다른 학기들이 첫 학기보다 훨씬 재미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 나름 역동적이었던 학기를 보내게 됐냐고 묻는다면 특별히 할 말은 없다. 다만 처음에 지나치게 굳어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한 발짝을 디디면 또 다른 우연이 기다린다는 걸 이제는 안다.

스무 살이 다 끝나가던 어느 날, 집에 온 택배를 받았다. 외삼촌이 보내준 카메라였다. 취미용으로 구입했지만 쓸 일이 없으니 내게 전해주겠다는 소식과 함께 말이다. 처음엔 기껏 좋은 카메라를 받고는 스마트폰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용법도 모른 채 테스트용으로 찍었던 초점 나간 사진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은 사용법만 주야장천 읽어댔다. 그렇게 한 달 째, 이곳저곳을 찍고 여러 기능도 사용해 보니 나름 봐 줄 만한 사진이 나왔다.

카메라가 손에 익은지 반년 후, 어느새 사진은 가장 큰 행복이 됐다.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서면 의식하지 않던 것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루가 48시간 같았던 첫 학기와는 다르게, 출사를 가다 보면 도무지 따분할 틈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필름 카메라를 챙겨 나가는 삶은 활기로 가득해졌다. 지루함과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처음이 무색할 만큼 말이다.

결국 삶은 우연과 기회의 연속이다. 우연히 받게 된 카메라가 나의 일부가 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를 계기로 삶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게 20대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래프는 변곡점에서 제일 요동치는 법이다. 변곡점을 기점으로 내려가던 그래프도 다시 위로 올라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대하던 대학 생활이 아니거나 지금 당장 막막함을 느낀다 해도, 작은 무언가를 계기로 새로운 활력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새 학기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자신을 모른다 해서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긴장 풀고 ‘가장 쉬운 하나’부터 시작해 보자. 설령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더라도 크게 개의치 말자. 우린 모두 부딪혀가면서 알아가곤 하니까.

당신의 첫 봄이 충만함으로 가득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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