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 불안정함. 그래서 안정적인 삶을 택하려고 하는 세대.

어떤 이는 우리를 부모세대보다 잘 살기 어려울 것이라 하고, 그들과의 격차 또한 점점 늘어만 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나마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세계로 빠진다. 전화보다도, 문자보다도,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처럼 덜 직접적인 방법들이 편해졌고, SNS에서 받는 좋아요 수가 명함이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모든 것들에 앞서가기 위해,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또 바꾼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타인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이 편하다. 오프라인으로 누군가를 만나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면 된다.

익명이 편하다. 친한 친구보다도 익명의 소통 창구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 누군가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을 원치 않으면서도, 동시에 나에게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SNS에 게시물을 올렸을 때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그리고 누가 나를 팔로우하는지 궁금해한다. 그래서 생각보다 좋아요가 없을 때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동시에 우리는 보는 것에 민감해졌다. 쉴 때 가장 많이 접속하는 것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왓챠다. 예전처럼 무언가를 기다리기보다 이미 나와 있는 것을 몰아본다. 영상들은 자극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이 접속한다. 이 공허함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아마 내일 죽더라도 똑같은 짓을 반복할 테다. 왜냐면 이게 익숙하니까.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책보다는 그것을 요약해준 영상이 편하고, 끊임없이 SNS에 나를 알려야 한다. 그래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남들을 따라해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나는 과연 부모세대보다 잘 살 수 있을까?

부모님은 나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셨는데, 나는 그들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해본다. 언제 끝날지 모를 굴레 안에서.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이 굴레도 언젠가 끝이 나겠지. 그렇지만 나는 우리에게 꼭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잘하고 있다고. 우리는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낼 거라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가 과거와는 다를지 몰라도, 그 끝엔 분명 희망이 있을 것이라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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