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일본에서 살겠다고 했다. 눈이 나리는 홋카이도에서. 흔히 아는 삿포로도, 비에이도 아니었다. 홋카이도의 이름 모를 시골, 비후카에서 살겠다고 했다. 그곳의 마을 공동체에서 농사를 한다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면서, 그 수확물로 낫또도 만들고 미소 된장도 만들겠다고 했다. 덧붙여 콩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커피도 콩이고, 두부도 콩이고, 두유도 콩이 아니던가. 하여튼 그녀는 콩 이야기를 할 때 꽤나 행복해 보였다. 3년 전 섬유 회사에서 갖은 옷가지들에 쌓여 찍었던 사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일본에 그렇다 할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몇 톤씩 버려지는 옷감을 감당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홋카이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온갖 비건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던 중 삿포로 외곽에 있는 비건 레스토랑 ‘이타타키 젠’을 만났다. 그곳의 여 사장님, 하루야마 아키코 선생님께서 가는 길 멀다며 대나무 잎에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를 싸 주셨다고 했다. 밥과 소금으로 뭉친 그 오니기리가 언니의 마음을 훔친 모양이다. 무턱대고 일하게 해주십사 들어갔고, 그곳의 일원이 됐다. 언니는 딱 1년 뒤에 서울에 비건 레스토랑을 열었다. 지금은 혜화에 또 다른 비건 베이커리를 열었다. 언니는 그런 사람이다. 가치로 삶을 굴리는 사람. 가득한 세상에서 더 뺄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 그녀의 이름은 때마침 초원이다. 이름처럼 산다.

뺄셈이 언니의 가치였다면, 내 가치는 발견이었다. 현상을 단어로 묶는 일, 빛으로 담는 일. 사람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희생이 또 다른 희생으로 반복되지 않길,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구할 수 있길 바랐다. 그게 언론을 택한 이유였다. 언론 안에서 시간을 보낸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간다. 내 언론의 선배는 언젠가 반농담으로 그런 일을 왜 언론인이 돼서 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정의나 공정이 과연 전할 수 있는 가치냐고도 덧붙여 말했다. 세상엔 플랫폼이 넘쳐나고 보지 않으면 쓰지 않은 것과 같고 쓰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은 것과 진배없을지도 모르니까.

꽤 허무하게도 내 답변은 ‘그러게요.’ 였다. 그러게요. 왜 보지도 않을 글을 쓰고, 버려도 상관없는 것들을 아낄까. 왜 귀찮게 세상에 가려진 부분을 들춰내고 결국 누군가 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걸까. 나는 무얼 찾아 조용히 잠자고 있는 것들을 쿡 찌르려고 하는 걸까. 어쩌면 눈 나리는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과 살면서 콩을 기르는 일이, 배고픈 여행자에게 주먹밥을 건네는 일이야말로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괴로웠다. 무의미, 다른 것보다 괴로운 것은 가치의 상실이었다.

어쩌면 의미라는 건 발견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찾아낸 그 무언의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기억의 초고를 쓰는 일, 시간을 넘어 말을 전하는 일.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존재가 필요한 일. 나는 어쩌면 콩 한 줌의 가치도 없을 고민을 매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또한 내가 가치 있다고 믿으면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전엔 그저 지나쳤던 문장이 드디어 마음에 왔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로 이 글을 마친다. ‘그대 지혜는 단잠을 이루기 위해서는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참으로 삶이 무의미하고 무의미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면 내 경우에도 이것이 가장 선택할만한 무의미가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