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의 필자는 산업부 산하 한 공공기관의 1년차 입사자로, 사내규정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기관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넓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전샘(사학·20년졸)
전샘(사학·20년졸)

칼럼 제의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할지는 하나도 모르겠다’였다. 비교적 최근에,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쨌든 드림기업의 신입사원이 되었다. 회사생활은 내가 꿈꿔온 것과 정확히 똑같지도, 아주 다르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회사원이 된 내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취업을 준비 중인 이화인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지난 한 해 동안 취업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여러 시점마다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얻었다. 그렇게 공부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문제가 나올 때, 눈치 보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전환형 인턴의 끝에 최종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을 때마다 익명의 벗들에게 이런저런 위로를 많이 받았지만 모두 귓가를 맴돌다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취준은 1승, ‘최탈’ 다음은 ‘최합’이라는 위로도 어느 것 하나 내 맘을 달래주지 못했다. 취준은 1승이라더니 다른 사람은 대체 몇 번이나 승리하는 건지, 최탈 다음은 최합이라는데 더는 도전할 기력이 없다면 어떡해야 하는지 하는 삐딱한 마음이 솟아 애정 어린 조언과 격려가 하나도 와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딱 하나, 같이 고배를 마신 소중한 동료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힘든 처지를 토로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오늘 단 한 글자도 제대로 보지 못했더라도 집에 들어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좋은 말과 위로보단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과 신세 한탄 한 번 하는 것이 내일을 준비하는 원동력이 될 때가 있다.

학부 시절 가장 좋아했던 작가가 학과 행사의 일환으로 방문했을 때, 수줍고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다이어리를 꺼내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난다. 문학상을 받고, 연이어 낸 단편집이 매우 큰 호평을 받은 그가 작은 교실에 둘러앉은 대여섯 명의 학생들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처음 꺼낸 말은 “오늘 이 자리에 오는 길에, 여러분들에게 대체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 다이어리에 그동안 제가 실패한 일들을 적어왔어요”였다. 나는 그 순간의 적막과 따뜻함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더듬을 수 있다.

 

멱살 잡을 ‘취업의 신’은 없었고

공부도 열심히 면접도 열심히

떨어지는 것도 열심히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때와 같은 기분을 비슷하게나마 안겨주기 위해 쓴다. 내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얼마나 절실하고 노력했는지를 써 내려가기보단 처절하게 실패하고 울던 날들을 써보려 한다. 그래서 이렇게 찌질한(?) 사람도 취업을 하는구나, 그러면 나도 머지않은 날에 이런 날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도록 말이다.

취업준비생이라는 말은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어중간한 내 삶을 글자 그대로 보여주는 단어였다. 취업을 준비하는 삶. 누구보다 바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돌아오는 길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 생각해도 잠들기 직전에 헛되이 보낸 10분이 생각나 눈물 흘리는 날들의 연속.

매 순간 치열하게 산 것은 아니지만,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알차게 살지도 못했지만, 취업의 신이 있다면 이런 ‘벌’을 받을 정도로 막살지는 않았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인생은 현실이라 멱살 잡고 항변할 취업의 신 따위는 없었고 나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중앙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공부하다가 울고 밥 먹다가 울면서 하루를 충실히 사는 수밖에 없었다.

나름의 규칙적인 백수 생활을 영위하며 종종 느꼈던 것은 어느 시점부턴 내 직업이 프로 취업 준비생 같았다는 점이다. 공부도 열심히, 자기소개서도 열심히 쓰고 면접도 열심히 보고 너무 열심히 살아서 떨어지는 것도 열심히 떨어졌다. 탈락 창을 볼 때마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울다가 자리에 돌아왔다. 이까짓 기업 안 가면 그만이라는 시원시원한 마음을 가졌다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난 구구절절 쓰인 탈락 문장에 인생을 부정당한 것 같아 좌절하고 힘들어했다.

취업준비생 신분이 길어질수록, 규칙적인 백수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간절히 바라던 직장인 사이의 갭은 넓어져만 갔고 아주 견고한 벽이 쌓여 나는 번번이 그 앞에서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부한 전개지만 취업 시장에 던져진 사람 중 8할이 그렇듯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취업 안 해!” 하고 돌아갈 배짱이 없었기 때문에, 현실의 벽에 부딪혀 넘어질 때마다 엉엉 울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했다. 어제 최종탈락을 했어도 오늘도 중앙 도서관을 찾아가 묵묵히 공부하기, 친구와 신세 한탄을 하다가도 자리로 돌아와 한 문제 더 풀기 등 프로 취업준비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긴 시간의 끝에 나는 이제 직장인이 됐다. 꿈꾸던 공기업에 들어와 꿈꾸던 생활과 정확히 똑같지도, 아주 다르지도 않은 업무를 하며 새로운 한 발을 내디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1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내 자신을 의심하고 깎아내리며 견뎌 왔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할 일은 하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이었고, 울고불고 질질 짜면서도 공부했던 것, 포기하고 싶은 날 한 시간 더 공부한 것들이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긴 시간 동안 영원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했던 것들, 그것은 벽이 아니라 문이었다. 나는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준비된 취업 준비생들이 이제는 문고리를 찾아 마침내 새로운 한 발을 내딛기를, 그래서 ‘에계, 직장인 고작 이거야?’ 하는 기분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떼기를 바란다.

전샘(사학·20년졸·공기업 입사 1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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