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죗값을 느껴야 했다.

천선란 작가의 소설 「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에 나오는 문구다. 책 속에서는 환경 문제에 심각성을 느낀 정부의 환경 부담금 정책으로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 하나를 사용할 때마다 세금이 붙는다. 그러나 주인공 은비의 부모님 같은 영세 자영업자는 재사용할 수 있는 그릇으로 바꾸라는 환경단체의 설교를 들어가면서도 계속 일회용기를 사용한다. 그릇을 수거할 인력도 없고, 수거해 설거지할 시간에 벌금을 내고 한 접시를 더 파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은비는 생각한다. 가게 한쪽에 쌓인 플라스틱 용기를 볼 때마다 거기에 목이 걸려 죽는 새가 생각났지만, 부모님 역시 플라스틱에 걸린 새와 별다를 게 없었다고.

이 대목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나는 이제 환경보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제로웨이스트 샵을 이용하고, 페트병 뚜껑 업사이클링에 동참한다. 가능하면 용기를 챙겨 다니며 포장재를 줄인다.

하지만 그런 나도 어머니의 일회용기 사용은 묵인하곤 했다. 맞벌이를 하시면서 대부분의 집안일을 전담하시는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설거지 없이 편하게 일회용기를 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휴식과 쓰레기 사이에서 나는 고민하다 전자를 택했다. 비단 어머니 이외에도 환경을 보호하는 ‘조금의 수고’가 너무 큰 부담이 되는 이들이 있다. 성별에 따라서든, 경제적 어려움에 따라서든, 제로웨이스트라는 목표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지만 때로는 그 작은 실천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무게가 다를 때도 있다.

책 속의 환경 부담금이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안기면서 실제로 그들의 쓰레기도 줄이지 못했듯이, 계층, 성별, 장애 등 모두를 고려하지 않은 환경보호는 우리 중 가장 취약한 사람을 먼저 나가떨어지게 만들 수 있다. 성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기만 한다면, 결국 개인 용기를 설거지하고 불편을 추가로 감수해야 하는 것은 가정 내의 어머니, 여성의 몫이 될 확률이 높듯 말이다. 환경파괴나 일회용기 사용을 계속 묵인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속 가능한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환경뿐 아니라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우리 또한 지속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지속 가능함을 만드는 것은 우리 공동체 속에 아픈 사람은 없는지, 누가 너무 큰 짐을 지고 있는지 먼저 돌아볼 수 있는 따스함이다. 살기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회가 아닌, 우리 모두가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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