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6개월. 김혜숙 교수가 본교 총장으로서 달려온 시간이다. 겨울을 앞두고 쌀쌀했던 지난 12일, 본지는 김 총장을 본관 접견실에서 만났다. 퇴임을 앞둔 그에게 향후 계획을 묻자, 그는 웃으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학자로서의 소임을 다할 것 같다고 답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김혜숙 총장의 임기를 되돌아보며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김혜숙 총장. 사진=김서영 기자 toki987@ewhain.net
김혜숙 총장. 사진=김서영 기자 toki987@ewhain.net

코로나19로 학교 시스템들이 새롭게 마련되고 변화했다. 이를 겪으며 무엇을 느꼈나

절대적으로 나쁘거나 좋은 경험은 없다고 본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결국 가야 할 방향으로 우리가 나아갈 수 있게 했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다시금 4차 산업혁명 시대 속 디지털 역량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이전부터 전통적인 방식의 인문교육으로는 유능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디지털 역량과 수학적 역량을 키워주는 2020년 교양교육 개편을 시작했지만 당시 교수들과 학생들로부터의 저항이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온라인 교육이 대세로 자리 잡는 등 교육 방식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해당 저항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야 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4차 산업시대 교과개편으로 인문학에 대한 교육이 너무 줄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인문학을 줄이자는 게 아니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인문학의 필요성을 당연히 안다. 더욱이 인문학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방대하게 쌓여있는 빅데이터들을 어떤 관점에서 분류하고, 어떤 것을 버리고 취할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소위 외국어 하나를 배우면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들 말하지 않나. 우리가 사는 시대에 ‘컴퓨터 언어’라는 새로운 언어가 생긴 셈이다. 디지털 역량 강화를 통해 기존의 인문학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훨씬 풍성한 방식으로 꽃피우자는 말이다.

 

지난 임기 동안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임기를 시작할 때, 본교에서 일어난 시위로 인해 학생들의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았다. 학생들을 보며 트라우마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됐다. 트라우마가 무서운 이유는 평소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 속절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직접 목격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그래서 학생들을 위한 심리치료, 상담을 마련했다. 특별상담 인력을 충원해 약 2년간 진행했다. 원예수업을 도입해 생명존중과 자기치유의 바탕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며 우리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급진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본교는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대의 전환에 대한 인식을 첨예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선정, 교과목 개편, 2022학년도 AI융합전공 신설 등을 통해 이를 어느 정도 이루게 됐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여러 문제에 휩싸여 본교가 방향성을 잃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역사 속 이화의 역할과 역사적 인물들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3.1운동 100주년을 여성 관점에서 조망하고, 유관순의 새로운 사진을 발굴했으며 여성과 평화기금을 마련해 학술상을 제정했다. 보구녀관 복원 등을 통해 이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그들의 정신을 살리고 기억해내고자 노력했다. 우리 시대 안에 어떤 여성 리더가 있었는지, 이화가 만들어낸 인물이 누군지 다시 알렸다. 김옥길을 비롯해 김애마, 김영의, 최근에 작고하신 이효재 선생 등 이화가 배출한 여성 리더들을 돌아보며 이화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통이 잘 이뤄진 것 같은가

총장이 됐을 때 이화라는 커뮤니티가 심리적으로 분열되고 붕괴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교수, 직원 등 이화 내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했던 만큼 구성원들과 자유로운 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쉽다. 총장을 하며 현시대에서 ‘진정한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됐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수록 낙담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일례로, 총학생회를 포함해 학생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많이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서로가 가지고 있는 직책 때문에 매번 정형화된 관계에서 나오는 대화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말 한마디를 정말 조심하게 됐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은 맞다.

 

입시결과 표기를 포함해 본교의 대외이미지 훼손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 역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홍보실에서 악성게시물 대응 절차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 특정 게시물들에 대해서는 변호사 법률 자문을 통해 법적 대응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모든 악의적 게시물에 대해 강경 대응하기에는 패소할 경우 생기는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과 별개로 우리가 더 지혜롭게 이러한 문제들에 접근했으면 한다. 이화의 특수성으로 인해 사회 내 만연한 여성혐오는 이화에 대한 혐오로 표출된다. 이런 집단적 편견은 법적 조치로 해소될 수 없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이 이를 깨닫고 본인의 능력을 더 키워 결과로서 증명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로 나가기 전 면역을 기르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덧붙여 입결 표기 문제에 있어서는 좀 더 근본적으로는 학벌주의적 사회구조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학생들이 됐으면 한다. 90점인데 70점으로 표기했다며 분노하는 것은 현 학벌주의 사회를 수동적으로 인정하는 자세다. 본인의 잠재력을 시스템 속에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기에 구조적 불평등과 억압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구조화된 틀 밖에서 사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회 여러 집단에서 여자대학의 존립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자기 존재 이유는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성의 역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법적, 형식적, 제도적 차원의 평등은 장치가 마련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법 실행, 법 문화의 차원에서 여성들이 평등한 지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열린 지금까지 기술을 소유하고 있던 성(性)은 남성이었고 남성의 몸이 표준이었다. 남성을 표준으로 삼은 다음 여성을 부차적으로 끼워 넣는 방식이다.

여성이 자유롭게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낸 것이 기껏해야 100년 아닌가. 여성들 마음속에 있는 심리적 장벽은 아직 크다. 누가 억압해서가 아니라, ‘여자가 이래도 되나’, ‘내가 이 정도를 바라도 되나’, 자기 검열을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정의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남녀공학과 달리 이화는 여성이 표준이며 이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역사적 바탕과 힘이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끄는 지식의 저장소를 가지고 있는 종합대학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여성의 관점으로 그려내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다.

 

총장 취임 전과 후, 총장직에 대해 달라진 생각이 있는가

총장직을 수행하며 제도권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가 됐다. 사실 보직 경험이 많지 않아 제도 내지는 행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이해가 깊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정도로 제한이 많을 줄 몰랐고 하고자 했던 일들을 생각보다 많이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생각은 총장이 대학 구성원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큰 관점에서 보고 방향성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총장으로 일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아침 출근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보고서 한 장이 잊히지 않는다. ECC 물탱크 게이지 고장으로 화장실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대학이라는 곳은 일상적 생활부터 고매한 정신의 문제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삶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또한 학생부터 학내 노동자까지 굉장히 다른 성격의 삶이 진행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의 내용이 진행되는 와중에 모든 것을 통찰하며 미래를 기획하고 개척해나가는 것이 총장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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