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언론정보·15년졸) 동아일보 기자
이지훈(언론정보·15년졸) 동아일보 기자

누군가 “독서를 좋아하나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명쾌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다. 아예 읽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른 재밌는 일이 생긴다면 읽기는 언제든 우선순위에서 밀릴 준비가 되어 있어서다. 읽기는 내게 딱 그 정도의 흥미를 주는 행위다. 그래서 연재 칼럼 ‘읽어야 산다’ 기고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읽지 않아도 적당히 잘 살아가는 나로선 ‘읽어야 산다’라는 문장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의할 수 없는 주제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읽기’에 관한 나의 생각을 담담하게 정리하는 건 내게도 필요한 일이다 싶었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나는 ‘읽어야 산다’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정도로 열심히 읽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남보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 나는 ‘읽기’보단 내 생각을 글이나 말로 풀어내 타인에게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어쩌면 알고 있는 것과 알아낸 것들을 끊임없이 써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읽는 이유는 오로지 ‘근사하게’ 말하고 쓰기 위해서다. 글과 말은 개인의 고유한 생각을 언어 형태로 구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고로 비범한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천재가 아닌 대부분의 인간은 경험을 통해 생각을 만들어간다. 기껏해야 삼십몇 년 정도 되는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통찰력 넘치는 생각을 가져다줄 수 있겠나. 굴곡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무한한 사랑과 관심 속에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성격이 급한 나는 탁월한 생각을 할 수 있기까지 세월아 네월아 나이 먹길 기다릴 성미가 아니었다. 짧은 인생과 일천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너르고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나의 생각들을 새롭고 정확한 언어로 바꾸어 세상에 선보여 돈도 벌고 사랑도 받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읽는다. 영화나 드라마도 같은 이유로 본다. 얼마의 돈과 약간의 시간을 들이면 한 사람이 일생에 거쳐 경험하고 연구한 것들을 단숨에 얻을 수 있어서다. 물론 온전히 내 것인 양 행세하진 못하겠지만 ‘이런 생각도 있어’ 하며 얼추 흉내는 낼 수 있다. 타인의 경험과 생각도 여러 번 모사를 하다 보면 내 뇌와 몸이 직접 겪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읽기로 얻은 것들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굳게 믿고 있던 신념이 반대 방향으로 향할 때도 있고 같은 방향에서 한두 발자국 더 나아가기도 한다. 생각이 미치는 영역이 사방팔방 종횡무진하는 경험을 나는 읽기를 통해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여러 번 들었을 법한, 평소 내가 즐겨 찾는 생각들을 떠올려보았다. 대부분 읽은 책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떠한 선의도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서 오므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건 언제나 차악’이라는 생각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에서 얻었다. ‘사랑의 상실은 몇 번을 겪어도 별수 없이 매번 힘들다’는 생각은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마지막 구절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무한히 증식되는 자본과 달리 토지는 한정된 자원이므로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는 부동산에 대한 내 생각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서 따왔다. ‘불확실한 미래의 단꿈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진 않겠다’는 생각은 다자이 오사무를 읽으며 더욱 확실해졌다. ‘사람이 슬픔에 사로잡히면 마음 둘 곳 없어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건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읽으며 느낀 것이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을 읽고는 ‘변덕이 심한 건 단점이 아니라 자의식이 강하다는 방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개똥철학처럼 보일 수 있는 이런 생각들은 모두 ‘읽기’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다. 읽기로 얻은 것들은 내가 가진 고유의 경험, 생각과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물질이 되어 왔다. 그것들을 공유했을 때 동의하지 않거나 별 감흥을 못 느낀 사람도 있었지만 즐거워하며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을 편애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써내고 보니 결국 ‘읽어야 산다’라는 말이 아예 틀린 것 같진 않다. 물론 ‘읽어야’와 ‘산다’라는 두 어절 사이엔 많은 것들이 생략돼있지만 말이다.

이지훈 동아일보 기자

*201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했다.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현재 사회부에서 서울시청을 출입하고 있다. 2018년 ‘새로 쓰는 우리 예절 - 신(新)예기(禮記)’ 시리즈 기사 특별취재팀에 참여해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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