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잃어버린 2020년이다.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는 이런저런 계획도, 희망도 많았는데, 막상 마주한 2020년은 허탈하게 지나가는 모습이다.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기회도, 화창한 봄과 화려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여유도 모두 빼앗긴 채, 예고 없이 들이닥친 ‘고립’에 허둥지둥 적응하기 바빴다. 그리고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올봄에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형적인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기계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실제로, 기초적인 작업을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기기와 그 시스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강의에 필요한 자료들이 제대로 입력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나의 무지나 전파 불량으로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아 수업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나?’와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학생들과의 연결이 이미 끊어지기나 한 것처럼 모든 게 막막하고 불안했다. 게다가 대면 수업이 지니는 활기와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믿어왔기에 밋밋하기만 할 비대면 수업에 거부감도 들었다. 학생들의 반응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혼자 떠들다 혼자 끝내는 그야말로 ‘나만의’ 수업이 될 것 같았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불안했던 나는 오래전 첫 수업을 앞두고 있었을 때처럼, 수업 준비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컴퓨터 화면 한편에 자리 잡은 줌(Zoom) 아이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동안 새 학기는 시작됐다.

그런데, 온갖 근심 걱정을 안고 시작된 비대면 수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비대면 수업을 위해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큰 힘이 됐던 것은 어설픈 나를 믿고 따라와 준 학생들이었다. 대면 수업에 비해 과제가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줬고, 질문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Q&A, 채팅창, 메시지, 메일 등으로 질문이 들어왔고, 수업에 일찍 들어오거나 수업이 끝난 후 남아, 화면 저 너머에서 질문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비록 매 순간 얼굴을 보고 표정을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질문에 답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이해가 안 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혼자만 떠들고 끝날 것 같았던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활발한 ‘소통의 장’이 돼 있었다. 특히 학업 내용을 다지기 위해 사이버캠퍼스를 수시로 들어와 내가 올려놓은 자료와 답변을 몇 번씩 확인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진지함과 성실함에 감동받았다. 분명 학생들도 처음에는 나만큼 당황스럽고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각자는 나름대로 불안을 최소화하고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비대면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이와 같은 학생들의 능동적이고 활발한 참여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대면비대면은 수업의 한 방식에 불과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은 학업에 대한 우리의 열정과 관심 덕분이라는,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21세기가 디지털과 AI의 시대이며 이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물론 새로운 소통 방법이 생겨난 만큼, 그 방법을 활용할 줄 알아야 21세기를 좀 더 편리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 변화와 무관하게 삶의 주인은 여전히 우리 인간들이다. 디지털과 AI를 만들어낸 것도 인간이고, 그것들을 사용할 주체도 인간이다. 디지털과 AI는 인간을 위해 사용될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수단과 방법이 어떤 것이든, 그 중심에는 인간들이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맞춰 디지털과 AI를 활용해야지 우리가 디지털과 AI에 맞춰 살 수는 없다.

2학기에 또다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요즘, 비록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반가운 인사를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처음 비대면을 맞이하던 봄학기 때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고 컴퓨터 작업을 두려워하며 잘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비대면 수업 준비에는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비대면 수업을 잘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 지나친 허세일까?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학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학생들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마음과 자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로 반갑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여기서 ‘우리는 상황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라는 또 하나의 값진 교훈을 얻는다. 비대면 수업뿐 아니라, 앞으로도 적응해야만 할 낯선 환경은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으며 그때마다 거부감이나 불만을 표출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파악해 그것이 초래하게 될 한계를 극복하려 애쓸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길 것이며, 그만큼 삶의 지혜도 늘어날 것이다.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웠던 2020년을 거치며 우리는 오히려 많은 것을 깨닫고 한 뼘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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