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나연 기자 why_eon@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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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학문 분야를 연구하는 상아탑인 대학. 그러나 역(逆)으로, 대학 수업을 위한 사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학교 수업만으로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몇몇 학생들은 사비를 들여 학원을 가거나 인터넷 강의(인강)를 수강하고 있다.

 

어문계열 학생들 어려움 겪어

강진주(독문·20)씨는 본교 합격 후 2월부터 꾸준히 독일어 과외를 받고 있다. 독어독문학과(독문)인 강씨가 독일어 과외를 받는 이유는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입학 전 독일어를 접해보지 못했던 강씨에게 주위 사람들은 ‘본교 독문과면 쉽지 않을테니 선행학습을 꼭 할 것’을 권했다. 그렇게 2월부터 과외를 받고 입학한 강씨는 1학년 권장 회화 수업인 <독일어회화Ⅰ>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회화 수업에서는 말을 듣고 해석해야 하는데,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지문이 너무 길고 어려웠어요. 만약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다면, 교수님이 학생들이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넘어가셨던 부분을 모두 놓쳤을 거예요.”

강씨는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하거나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을 제외하면 대개 독일어를 처음 배우는 상황”이라고 했다. 강씨는 학과에서 언어 ‘초보자’를 위한 <독일어회화Ⅰ>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초보자를 위한 분반이더라도 어려운 수업임이 분명했다”며 “낮은 반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과외를 받으며 따라잡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본래 강씨는 방학에만 과외를 수강했다. 그러나 강씨의 친구들이 계속해서 과외를 받는 것을 보고 뒤처질까 걱정돼 9월 학기 중에도 받기 시작했다. 강씨에게 과외는 확실히 도움이 됐지만, 비용 측면에서는 부담이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강씨의 과외비는 30분당 2만 원이었고, 2시간 수업을 들을 경우 8만 원을 내야 했다. 강씨는 “초보자를 위한 전공 수업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ㄱ(중문·18)씨 또한 학과 수업에 어려움을 겪어 2019년 1월부터 7월까지 중국어 학원에 다녔다. ㄱ씨는 입학했을 당시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ㄱ씨는 입학했을 당시 강의계획서를 봤을 때, 초보자들이 들을 만한 수준의 어학 수업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실력을 올린 후 수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친구가 교수님과 면담했는데 저와 같은 어학 실력에 대한 고민을 말씀드리니, ‘학원에서 개인적으로 배우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학원에 다니게 됐죠.”

7개월 동안 중국어 학원에 다닌 ㄱ씨는 8월에 중국으로 교환학생 파견을 갔다. 중국 파견교에는 HSK5급, HSK6급 수준의 어학 수업 분반이 개설돼 있었다. HSK 한국사무국에 따르면, HSK5급은 중국어 신문을 읽고 영화를 시청할 수 있는 실력이다. 가장 높은 6급의 경우 중국어로 개인 의견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이다. HSK5급 분반을 들었던 ㄱ씨는 HSK4급을 공부하고 파견을 갔기에 조금 어렵긴 했으나 수업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상실감도 느꼈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중문과에 들어왔는데, 중문과에 다니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점에 ‘현실자각타임(현타)’을 느끼기도 했어요. 학원비도 한 달에 약 20만 원 정도라 부담도 됐고요. 하지만 이미 중국에 살다 온 특기자 친구들과 실력 차이가 너무 났고, 어차피 어학 공부라는 것이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어서 열심히 학원에 다녔어요.”

ㄱ씨는 “이전에는 인문대학 루체테 사업으로 저렴한 가격에 수강할 수 있는 중국어 수업이 열리곤 했다”며 “학교에서도 도움을 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단기간에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학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1학기에 열린 기초 수업인 <기본중국어>처럼 다양한 수준의 어학 수업이 개설된다면 학교에서도 충분히 어학 수업을 수강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타 학과에서도 고충은 마찬가지

학교 수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학원에 다니는 경우는 어문계열에만 특정된 것이 아니다. 배서영(경영·19)씨는 <미시경제이론> 수업에서 어려움을 겪어 9월 개강 초부터 사설 경제학 인터넷 강의(인강)를 따로 수강했다. 배씨는 <경제원론> 수업을 먼저 수강하지 않아 강의와 수업 자료로는 교수가 주는 문제도 풀 수가 없었다.

“강의를 수강했던 다른 학생들이 <경제원론> 강의를 안 들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했고, 교수도 선수 강의에 대한 언급을 특별히 하지 않으셔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험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기말고사는 더 힘들 거라 예상해 지금도 학교 강의와 병행해서 인강을 듣는 중이에요.”

교수에게 질문하는 것만으로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교수님께 질문하면 답변이 바로 오는 것이 아니다 보니 수강생 오픈카톡방(오카방)에 조금 더 의지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다른 수강생들의 질문을 보면서, 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불안해져 인강을 듣게 된 것도 없잖아 있었죠.”

배씨는 인강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인강에서 경제학에서 쓰이는 미분 같은 것들을 한 번 짚고 넘어가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이론에서는 교수의 강의 방식이 달랐기에 인강을 먼저 듣고 학교 강의와 대응시켜 이해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어 사설 강의는 CPA(공인회계사시험)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학 강의였기에, 양이 많아 학교 강의와 병행하는 게 부담이었다고 덧붙였다.

한승주(보건관리·15)씨 역시 복수전공 수업인 <수리통계학Ⅱ및연습>에서 어려움을 겪어 인강을 병행하고 있다. 교수의 설명이 어려웠고, 설명에서 생략된 부분을 채워 넣기 위해서였다. “질문했을 때, 이미 앞의 내용을 완벽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설명하셔서 설명을 들어도 구멍이 남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오리엔테이션 이후 바로 사설 인강을 수강하게 된 한씨는 “확실히 설명이 채워지니 수업 이해가 수월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인강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교내 커뮤니티에서 인강을 나눠 들을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참여해 3명이 같이 듣게 됐어요. 각자 10만 원씩 냈는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업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니 이러한 불필요한 지출이 부담스럽죠.”

19학번 ㄴ씨도 수업에서 어려움을 겪어 인강을 수강하게 됐다. ㄴ씨는 영어로만 진행된 <유기화학Ⅰ>의 학습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글 인강을 구매했다. 함께 강의를 듣는 피트(PEET) 준비생들은 이미 학원이나 인강으로 공부를 거의 마친 상태였기에 실력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꾸고자 인강을 선택한 부분도 있었다.

ㄴ씨는 “따로 돈을 내고 인강을 들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웠지만, 선수과목을 제대로 공부해야 <유기화학Ⅱ>를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수강했다”고 전했다. 이어 “학생들이 인강에 의존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수업의 질을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생들 위한 해결책 있나

본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수업 분반을 다르게 개설하고 있거나, 추가 강의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중어중문학과에서는 <기본중국어>를 1학기에 개설해 초급 학습자에 맞춰 교육한다. 김정구 중어중문학과장은 “처음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기본 개설 교과목을 이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중국어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원어민 교수와 한국인 교수 등 다양한 분반으로 구성됐기에 학생이 선호하는 교수의 강좌를 수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독어독문학과 역시 마찬가지로 수강생의 언어 실력에 따라 분반을 개설한다. 이준서 독어독문학과장은 “교무처에서 학과 취지를 이해해줘 어학 과목 분반을 나눠 운영하고 있다”며 “매 학기 학생의 수준을 파악해 가르치기에 분반의 난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이 학과장은 “강의에서 튜터 및 튜티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불어불문학과는 초보자 분반을 따로 만들지 않고 있다. 장한업 불어불문학과장은 “언어 초보 학생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개인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며 “인강을 수강하거나 학원에 다니면서 실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담당 교수가 초보자에게는 수강을 권장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는 수강하지 않기를 권장하는 경우는 있다고 덧붙였다.

양인상 자연과학대학장은 사교육을 병행하는 현상에 대해 “최근 고등학교에서 기초적인 미분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인문계열 공부를 하다가 대학 진학 후 이공계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기초과학 과목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이 교육이 정착되면 비싼 사교육을 받아야 할 이유도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명휘 경제학과장은 영어강의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튜터제도를 운영하고, 한국어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본 현상에 대해 “강의를 바탕으로 예복습을 꾸준히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대학원생이나 학습지도가 가능한 지원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수업 난이도를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심소희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중국문자의이해> 수업 개강 전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심 교수는 ‘한자를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해 주었으면 하는 점’, ‘한자에 흥미가 있거나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본인의 한자 능력’ 등에 대해 질문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심 교수는 기초부터 다지는 것으로 수업 방향을 정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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