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본교는 1학기에 이어 2학기도 온라인 수업을 진행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각각 한국에 남거나 본국으로 돌아가 온라인으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유학생들의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이들의 비대면 유학 생활을 직접 쓴 수기로 전한다.

 

 

나의 나라는 어디에...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

장 안나(Tyan Anna·영문·17)

장 안나씨. 제공=본인
장 안나씨. 제공=본인

나는 러시아 모스크바(Moscow)에서 온 고려인 3세다. 아버지를 따라 고등학생 때 한국에 왔다가 한국이 좋아 201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올해 초, 겨울 방학을 맞아 러시아에 다녀오려고 비행기 표를 끊었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되는 바람에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지내고 있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돼 새롭다. 온라인 수업은 힘든 점도 있지만, 편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강의 동영상을 무제한으로 100번도 더 돌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내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이번 학기 <북한정치의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듣고 있다. 용어와 내용이 어려워 5초마다 강의를 멈추고 재생하기를 반복한다. 그 5초의 내용을 다 정리하고 번역하면서 강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북한에 관심이 많아 힘들게 수강 신청을 했는데, 만약 오프라인 강의였다면 이미 포기하지 않았을까.

<The Story of Human Language>라는 교양 수업도 재미있게 듣고 있다. 이 수업은 언어와 그 기원의 관계, 뇌의 구조와 언어의 다양한 특징 등을 배운다. 아이들이 어떻게 언어를 배우고 그들 고유의 단어를 만들어내는지 배울 때가 가장 흥미로웠다. 수업이 재미있어 강의 동영상 하나를 2~3번씩 들은 적도 많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언어학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온라인 수업 덕분에 복습이 쉬워졌고 수업을 이해하는 것도 수월했다. 또한 이제 통학할 필요가 없고, 채플에 늦지 않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대강당까지 뛰어갈 필요가 없어 좋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는 등 슬픈 사정도 생겼다. 나는 원래 생활비를 스스로 벌었다.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취소돼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다. 용돈을 버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의 경우, 사장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코로나19 보균자일 수 있다’, ‘외국인은 손님에게 안 좋은 감정을 줄 수도 있다’ 등의 이유로 채용을 거부해, 이력서를 내는 것도 고통스럽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도 이력서를 내지 않고 있다. 이화에 입학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지만,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외국인 때문에 코로나19가 터졌다’는 편견은 외국인 차별을 겪으며 생긴 내 정체성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나는 고려인이라 외모는 한국인과 닮았지만, 억양과 말투는 한국인과 조금 다르다. 내가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너 외국인이야?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고 묻곤 한다. 한국에서는 말투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외모 때문에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이 세상에 내가 ‘우리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한 번이라도 외국인이라는 칭호 없이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한국에 오게 됐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려인은 여전히 외국인이다. 코로나19로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간다. 이 또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다

응웬 빅 누옛(Nguyen Bich Nguyet·국제·18)

베트남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온라인 수업을 듣는 응웬 빅 누옛씨. 제공=본인
베트남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온라인 수업을 듣는 응웬 빅 누옛씨. 제공=본인

나는 현재 베트남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한국에서 3학기를 마치고 2019년 12월 겨울 방학,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올해는 베트남에서 지내기로 선택했다. 이번 학기 7개의 수업을 듣는데, 모든 수업의 수강생이 50명을 넘어 한 학기 내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우선, 한국과 베트남은 2시간의 시차가 있다. 지난 학기에 들은 <한국어3> 강의는 오전8시에 시작했는데, 베트남 현지 시각으로는 오전6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오전5시30분에 일어나 준비해야 했다. 또한 베트남에서 머물다 보니 학교 도서관에 갈 수 없어, 교과서를 사거나 공부할 자료를 찾기 힘들었다. 방과 후에는 수업 내용을 의논할 친구가 없어 아쉽기도 했다. 어려운 점도 있지만, 집에서 온라인으로 공부하며 시간 관리 능력을 키웠다. 매일 계획을 세우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이후 부모님의 일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희생하기로 했다. 베트남은 직접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할 기회가 한국에 비해 많다. 온라인 수업을 들은 덕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집에서 지내며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요즘 나는 어린이 영어교육 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며 인내심과 침착함, 그리고 대화 기술을 배우고 있다. 공부 외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이 일이 즐겁다.

온라인 수업 덕분에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올해 나는 할아버지를 여의었다. 가족에게 큰 슬픔이었기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베트남 집에 머물며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내게 큰 의미였다. 요즘은 어머니와 함께 매일 요리를 한다. 어머니께 다양한 음식 조리법을 배우기도 했다. 오랜 유학 생활 후,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는 내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머물기로 한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보내는 마지막 학기

아크바랄르 크즈 타자굴(Akbaraly kyzy Tazagul·불문·17)

아크바랄르 크즈 타자굴씨. 제공=본인
아크바랄르 크즈 타자굴씨. 제공=본인

눈 깜빡할 사이에 4학년이 됐다.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라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입학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역시 시간이 빠르다.

이번 학기는 한국에서 전공 논문을 쓰고 복수전공 졸업 시험도 준비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기숙사 방침이 1인 1실로 바뀌어 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방에서만 보낸다. 라운지에서조차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친구들과 기숙사 라운지에 모여 공부하고 밥을 먹었었다. 코로나19로 등교도 못 하고 방에서만 공부하니 답답하고 아쉽다. 이 귀한 유학 생활을 방에서만 보내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코로나19가 전파되면서 겨울 방학 때 본국인 키르기스스탄에 가지 못했다. 가족을 못 본 지 2년이 돼 간다. 여름 방학에는 갈 계획이었으나 역시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아 가족을 보러 갈 수 없었다. 가족이 많이 보고 싶다. 현재는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응원받고 힘을 얻어 버티고 있다. 올해는 모두에게 쉽지 않은 한 해다.

혼자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돌이켜 봤다. 이화에서의 생활이 내게 가장 좋은 것들을 가져다줬다. 어떤 것도 이화, 귀한 친구들, 그리고 소중한 추억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1학년 때 학교 캠퍼스가 워낙 넓어 강의 건물을 찾지 못해 2~3주 동안 지각했던 기억이 난다. 또 기독 연합 동아리 CCC(Campus Crusade for Christ)에 가입해 대동제에서 동아리 부원들과 샤슬릭(Shashlikl중앙아시아에서 전파된 러시아식 꼬치구이), 아이스크림 와플을 만들어 팔았던 따뜻한 추억들도 있다.

내가 한국에 관심 가지게 된 이유는 한류 영향이 크다. 고등학생 때 친언니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사랑하게 됐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한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대학으로 이어졌다. 2015년 한국의 정부 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2016년 부산 동서대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우고, 2017년 본교에 입학했다. 이화 벗들과 함께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한국어 5급 수준으로 들어왔지만 강의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유학을 준비하면서 꿈꾸던 것들, 나를 믿어준 부모님과 장학생으로 공부할 기회를 준 한국을 기억했다.

이화인으로서 4년 동안 꿈에 그리던 교육을 받았고, 받고 있다. 한국어, 불어, 그리고 정치를 열심히 공부해 외교 분야에서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을 잇는 금다리가 되고 싶다.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관계를 밀접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치열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듯 이 순간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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