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공상 과학 만화책을 보면 2020년에는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심지어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선이나 다른 행성에 거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염병이 닥친 2020년 지금, 사람들은 집에 틀어박혀 저마다의 ‘달고나 커피’를 휘젓고 있다. 코로나로 사회적 생활이 박살 나버려 우리는 반신불수가 돼버린 시대에 사는 것이다. 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 사람들은 답답함, 불편감을 넘어 종종 무기력증이나 우울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점점 스미는 우울감을 우리는 ‘코로나 블루’라고 부른다. 이 근저에는 무력감이 있다. 자의로 바꿀 수 없는 상황,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사람들은 자의로,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4000번 저어 먹는 달고나 커피’를 필두로 쉼 없이 휘젓고, 치대고, 흔드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21세기 성과사회의 주요 도식이다. 불가능은 없고, 한계도 없다. 이러한 긍정성의 사회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 발전하지 못하는 사람은 곧 낙오자가 되고, 도태되기 마련이다. 낙오에 대한 두려움은 곧 자기 착취로 이어지는데, 우리 스스로는 이것을 ‘열심히 사는 나’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이러한 ‘무엇이든 가능한’ 생활이 붕괴했을 때, 자기 착취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은 더더욱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박탈감은 조용히 일상에 스민다. 생활 속에 우울이 녹아있게 되는 것이다.

또 코로나 블루의 다른 원인은 바로 생각의 유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현실이 미뤄지기 때문에, 실제와 공상을 판가름하기 어렵다. 이때 모든 의식은 자신의 내부로 향한다. 자의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영역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외부로 분출하던 에너지마저 내부로 끌어들여 사용하고 나면, 곧 에너지 밸런스의 붕괴가 닥친다.

극복 방법은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리고 정신 에너지와 신체 에너지 사용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몸을 쓰라는 의미다. 코로나 이전 자신이 외부에 집중했던 시간만큼 집 앞 인적이 드문 공원을 걷는다거나, 화상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등 생활의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또한 이제는 학교와 휴식 공간, 침실이 모두 하나의 공간, 바로 집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용도를 구분해줘야 한다. 흔히 규칙적인 생활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으로 대두된다. 침대와 책상 사이에 커튼을 달아두면 책상에 앉았을 때 침대로 뛰어들고 싶은 욕망이 줄어든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은 산책을 위한 의식을 행한 것이고, 조도를 낮추는 것은 곧 잠에 들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시키는 작업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코로나 사태의 종결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을 무사히 견뎌내기 위해, 또 코로나가 끝난 후의 변화에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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