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여성학과 교수
정지영 여성학과 교수

17세기 조선에 태어나 22년을 살고 생을 마감한 ‘김운’(김창협의 셋째 딸)은 생전에 그 형제들에게 “만일 남자가 될 수 있다면, 깊은 산 속에 집을 짓고 수백 수천 권의 책을 쌓아두고 그 가운데서 조용히 늙어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오씨에게 시집간 딸의 묘지명’, 「17세기 여성생활사자료집3」)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운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을 제일 좋아했던 시절은 초등학교 때였다.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그랬는지, 어릴 적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고, 엄마에게 야단맞는 때가 꽤 있었다. 하지 못한 말이 많아 분하고 속상할 때 내가 했던 일은 방구석에 앉아 동화책을 읽는 것이었다. 책 읽기는 위로였다. 나, 그리고 여기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 그건 자유의 느낌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쏙쏙 빼먹노라면, 억울한 마음은 어느덧 사라졌다. 그 시절엔 책이 아까워 조심조심 구겨지지 않게 소중히 다루곤 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다음으로 책을 많이 읽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원하던 학과에 들어간 것이 기뻐서 학교 도서관의 브로슈어를 보고 또 보며, 입학하기도 전에 도서관의 구조를 훤하게 꿰었다. 그리고 대학 1학년의 목표를 ‘책 100권 읽기’로 정했다. 책 읽기 장부를 마련하고, 한 권 읽을 때마다 번호를 매겨서 제목을 써넣는 기분은 뿌듯했다. 그 원동력은 지적인 경쟁심이었다. 내가 더 어려운 책을 더 많이 읽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얻은 어설픈 지식으로 논쟁하는 것이 낙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100권을 채우기가 쉽지 않아서 결국 상당수는 일단 빨리 읽을 수 있는 시집으로 채웠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시절에 나는 시를 좋아했다.

본격적으로 읽고 글 쓰는 것이 직업이 된 뒤로는 읽기는 ‘노동’이다. 대개는 읽는 동안 미간 가득 인상을 쓴다. 대학원 수업을 위한 난해한 논문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교정해야 하는 내가 쓴 글이거나, 논평해주어야 하는 학생들의 글을 읽는 것이 일상이다. 게다가 읽어야 하는 기한까지 정해져 있다. 때로는 그런 글에 감동하기도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글 속에 파묻혀 글이 주는 즐거움은 잃어버린 셈이다.

그런 중에 읽는 재미를 찾았는데, 그것은 글을 읽으며 글쓴이를 그려보는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이니, 자연스레 그가 어떤 사람일지 떠올리게 된다. 만일 실제로 그 저자와 현실에서 만나게 된다면, 차 한 잔 마시고 싶은지, 저녁도 먹고 싶은지, 아니면 모른 척 지나칠 것 같은지 생각해본다. 심도 있는 분석을 깔끔한 문장으로 풀어낸 논문을 읽었을 때, 그 저자를 알 만한 사람에게 지나가듯 물어보기도 한다. 과연 요즘 보기 드물게 열심히 공부하는 맑은 분이라고 답이 오면 “역시, 그럴 줄 알았지”하고 씩 웃는다.

현실에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깊은 대화를 하기는 쉽지 않다. 깊은 대화를 하려면 뜸 들이기가 필요한데, 뜸을 들이고 나면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다. 새로 발견한 맛집, 귀여운 동물들에 대한 일상의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삶, 죽음,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존재들, 그들과 맺는 관계, 그 의미, 인간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등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는 어려워서 손가락 몇 개로 꼽을 수 있는 오랜 친구가 아니면 잘 나누게 되지 않는다.

책에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가 오래도록 숙고한 것들이 글귀로 전해진다. 누군가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에 나는 밑줄을 긋고, 토를 단다. 그것은 마치 공원을 혼자 걷다 우연히 앉은 벤치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그 대화로 나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운 의미로 품게 된다. 우연히 만난 그의 얼굴을 보듯, 작가의 얼굴을 그려본다. 어떤 눈빛과 주름을 가졌을까.

최근에 그런 느낌으로 한 작가를 만났다. 그분의 집에 찾아가, 차 한 잔 얻어 마시며 오전의 햇빛이 기울어 주황빛으로 가구를 물들일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를 함께 들어도 좋겠다.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작년에 그의 시 ‘우리 조상들의 짧은 생애’(「끝과 시작」)를 누군가로부터 전해 받고, 나는 오랜만에 글이 주는 위로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사진으로 그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아,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이런 얼굴일 것 같았다. 그런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고, 그런 미소로 사랑을 나누고 때로는 까탈스럽게 살았겠구나. 시와 얼굴이 같다. 먼 곳에 살았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나는 멋진 언니, 선배를 만나 오래도록 뿌듯하다. 그분이 퀴리부인 이후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노벨상을 받은 것은 그 뒤에 알았지만, 노벨상이 뭣이 중한가. 그의 시구처럼 “단지 타이밍을 정확히 맞춘 생의 체험만이 있었을 뿐.”(‘우리 조상들의 짧은 생애’)

다시 조선시대의 김운 이야기를 해보자. 김운은 그토록 책을 좋아했지만, 시집간 뒤로 7년 동안 남편과 시집 식구 앞에서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한다. 김운의 이야기는 그 아버지와 형제의 글로 전해질 뿐, 김운 자신이 남긴 글은 없다. 김운의 얼굴을 상상해본다. 눈빛은 반짝였겠지. 지식에 대한 열망을 감추느라 얼굴 한구석에 그늘이 있었을까. 쉼보르스카의 시를 가져오자면, “자연은 끊임없는 노역에 지친 나머지, 해묵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활용해서, 과거에 이미 사용했던 얼굴들을 우리에게 다시 덮어씌웠을지도 모른다.”(‘부산한 거리에서 나를 엄습한 생각’, 「충분하다」) 우리 중 누군가는 김운의 얼굴을 물려받았다. 그토록 읽고자 했지만, 읽지 못한 책들과 함께.

정지영 여성학과 교수

*여성사 전공자로 서강대 사학과에서 공부했다. 조선 여성에 대한 논의가 현대 한국의 젠더 관계에 작동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읽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로 조선시대 부계 질서의 불안정성과 모순을 읽어내는 연구를 진행했다. 저서로 「질서의 구축과 균열: 조선 후기의 호적과 여성들」, 「동아시아 기억의 장」(편저) 등이 있다. 토론 중심의 여성학 강의로 2012년 ‘대학 100대 명강의’, 2018년 본교 강의우수교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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