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아(영문·15년졸) 조선비즈 경제부 기자
이민아(영문·15년졸) 조선비즈 경제부 기자

2020년 재테크의 키워드가 ‘동학 개미’라면, 2017~2018년에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금융부에서 일했는데, 우리 부서에서도 많은 인력과 시간을 할애해 ‘가상화폐 광풍’으로 시리즈 기사를 냈다. 특히 20·30대 또래들이 깊이 빠져있었다. 너도나도 가상화폐를 외치던 2017년 말~2018년 초에는 1비트코인의 시세가 6개월 전 대비 3배 넘게 뛰어 2400만원까지 치솟았다.

가상화폐가 대유행하기 6개월 전쯤인 2017년 5월에 그 존재를 알게 됐다. 빗썸·코인원·코빗 등 3대 가상화폐 거래소 본사에 취재하러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됐다. 생생한 기사를 쓰려면 직접 거래를 해보면서 개념 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액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지인이 가상화폐 거래로 “하루 치킨값은 번다”고 했던 말에 은근한 욕심도 피어났다.

취재 목적의 거래였기 때문에 여러 가상화폐를 골고루 매매해봤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아이오타 등 난생처음 듣는 이름의 가상화폐를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그해 여름을 보냈다. 큰 수익을 내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흥미롭게 감을 잡아갔다.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쌀쌀해지자 주변에서 “나 요즘 코인(가상화폐 거래) 하는데…”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됐다. ‘동료가 1000만원으로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해 일주일 만에 외제차를 뽑았다더라’는 도시 전설도 종종 대화 소재가 됐다. 가상화폐 시세를 늦은 밤까지 보다가 벌건 눈으로 출근한 동료를 신나게 놀렸던 기억도 있다.

당시 만나던 애인과의 데이트가 생각난다. 가상화폐에 푹 빠져있던 우리는 햄버거 가게에 가서 한 손으로는 햄버거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각자의 휴대폰을 만지며 가상화폐 시세를 보고 있었다. 서로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멍하니 춤추는 비트코인 가격에 빠져 있었다. 이를 자각하고 소위 ‘현타’가 왔다. 일주일 만에 만났는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오늘 저녁엔 가상화폐 시세를 보지 말자”고 약속하고 휴대폰을 뒤집어 놨다. 그 와중에도 ‘지금은 비트코인이 얼마일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일상의 많은 에너지를 가상화폐에 쏟았지만 남은 것은 반 토막 난 잔고뿐이었다. 애써 “인생 수업료일 뿐이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사실은 속이 타들어 갔다.

 

투기와 투자는 엄연히 달라

밀턴 프리드먼 공짜 점심은 없다

부끄러운 실패담을 동문들께 구구절절 공개하는 이유는 이 경험이 인생의 어떤 철학을 세우게 해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투기(投機)’와 ‘투자(投資)’는 엄연히 다르다는 걸 깊이 새겼다. 투자는 자본을 투입하는 대상의 내재 가치가 오를 것을 상정한 행위라면, 투기는 시세 차익만을 노리는 거래다. ‘이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가격이 오른다니 돈을 넣어두자’하는 묻지마 투자가 바로 투기다. 주식 시장에서 ‘다음 주에 이 종목이 상한가를 칠 거래’라는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난생처음 보는 종목을 매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계 최고의 주식 투자자 벤저민 그레이엄은 “철저한 분석 하에서 원금의 안전과 적절한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 투자이고,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모두 투기”라고 봤다. 투기는 그저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는 짜릿함을 줄 뿐이라는 게 그레이엄의 지론이었고, 나의 가상화폐 거래는 딱 그 수준이었다. 가상화폐의 효용성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화폐처럼 기능하지 않는데 왜 화폐라고 부르나’와 같은 기본 전제에 대한 의문도 해소할 수 없었다.

투자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시세 차익만을 노리다 큰 손해를 본 사례를 현장에서 수차례 목격했다. P2P대출(개인간 대출) 업체로 위장한 사기꾼에게 수백억원의 돈을 잃은 피해자들이 대표적이다. 사기꾼들은 ‘2개월간 돈을 빌려주시면 연 18%의 이자로 보답하겠습니다’라며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이 사기꾼들은 처음 수개월은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돌려주며 신뢰를 쌓아나갔다. 그러다 자금이 많이 쌓인 시점에 투자자들의 돈을 갚지 않았다. 대표가 폐업하고 잠적하면서 4000여 명의 투자자에게 약 570억원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은 ‘블루문펀드’, 투자금 130억원을 상환 않고 부도를 선언한 ‘헤라펀딩’, 앞선 투자자에게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의 돈을 모아 이자와 원금을 돌려막기 하다 적발된 ‘아나리츠’ 등 많은 사례가 있다.

투자 손실 사례는 기사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저런 일이 있었군’이라며 참조할 여러 가지 사례 중 하나로 읽힐 것이다. 하지만, 사건 사고에 직접 연루된다면 감정은 많이 달라진다. 더구나 대학생으로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조금이라도 불리려다 참혹한 결과를 마주하는 것은 더욱 끔찍한 일이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다. 재정 불안에 대해 쓰는 말이지만, 투자와 관련된 101 법칙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위험 없는 기대 수익의 증가는 없다는 것이다. 투기와 같은 요행으로 얻은 수익은 대개 한 번의 운에 그친다. 행운에 취해 투기하다 수익보다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생들이 투기에 빠진 사례를 자주 접하고 있다. 일확천금에 대한 유혹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투기판에 놓인 장기 말처럼 영혼 없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섣부른 투기는 현금을 방 안에 쌓아두거나 예적금 통장에 넣어두는 것보다 못하다. 동문들이 기사의 사례로 등장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민아 조선비즈 기자(「P2P투자란 무엇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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