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의 역사를 이어 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화인들이 있다. 1984년에 창단된 본교의 중앙영화동아리, '영화패 누에(NOUE)'다. 누에의 감독들은 이번 여름방학 동안 2명씩 팀을 이뤄 3편의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쇼쇼쇼'를 만든 최유림(뇌인지·18)씨, 최인희(사학·19)씨, '홀로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섬을 상상해보자(홀떨섬)'를 감독한 남은우(사회·19)씨, 정은형(철학·19)씨, '라 당스(La Dance)'의 공동감독 송재원(디자인·19)씨를 21일 ECC B215호에서 만났다. 

 

코로나19에 장마까지, 다사다난했던 촬영 현장

제공=영화패 누에 ‘홀떨섬’ 팀
제공=영화패 누에 ‘홀떨섬’ 팀

‘죄송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경의선 책거리에서의 촬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화 촬영 2주 전, ‘홀떨섬’ 팀은 촬영 장소를 잃었다. 촬영 허가를 받아놨던 경의선 책거리에서의 촬영이 불가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로 인해 촬영 일정도, 장소도 바꿔야 했다. 달라진 장소에 맞게 인물의 동선, 시나리오도 수정했다.

타지에 간 두 여성이 우연히 만나 함께 보낸 하루를 그린 영화 ‘홀떨섬’의 공동감독 남씨와 정씨는 “촬영 과정이 희망고문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촬영 허가를 받아 다 같이 으쌰으쌰 잘해보자 싶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악화돼 원점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다. 댄스 파트너로 만난 두 여성을 그린 영화 ‘라 당스’의 공동감독 송씨와 김서영(커미·18)씨는 영화 구상 단계부터 본교 학관 6층에 있는 레크레이션 홀을 촬영지로 정했다. 체육관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들어 두 인물이 만나는 연습실로 점찍어둔 장소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공간 이용이 금지되며 결국 촬영지를 새로 구할 수밖에 없었다.

송씨는 “장소가 달라지면 영화의 느낌도 아예 달라진다”며 “솔직히 많이 포기하고 시작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다행히 새로 구한 장소도 나쁘지 않아 새로운 느낌으로 만들자는 마음으로 촬영했다”고 덧붙였다.

장애물은 코로나19만이 아니었다. 최장기간으로 기록된 이번 장마는 촬영을 더 고단하게 만들었다. 취업준비생이 세 인물을 만나며 겪는 하루를 그린 영화 ‘쇼쇼쇼’ 팀이 엔딩 장면을 촬영하던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마지막 촬영날이기에 비가 그치기만을 한없이 기다렸지만 비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최인희 감독은 “감독으로서 계속 기다릴지 말지 결정 내리기 부담스러웠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오전2시가 넘어가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배우와 스탭들을 집에 돌려보냈다. ‘쇼쇼쇼’ 팀은 촬영을 마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최유림 감독은 “비가 와서 모든 것이 기대와 달라졌다”며 “비 때문에 엔딩을 찍지도 못했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찍어둔 장면도 매우 어둡게 나와 슬펐다”고 말했다.

 

길어진 촬영에 늘어난 지출, 울상 된 감독들

제공=영화패 누에 ‘홀떨섬’ 팀
제공=영화패 누에 ‘홀떨섬’ 팀

누에는 영화를 제작할 때 약 3~4주간의 프리프로덕션 기간을 가진 후 2~3일간 촬영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프리프로덕션은 시나리오를 짜고 촬영 장소와 배우를 섭외하는 등 촬영 전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는 단계다. 하지만 이번 여름, 이들은 프리프로덕션을 끝내고도 한 달이 지나도록 촬영을 마칠 수 없었다.

‘홀떨섬’의 감독 남씨와 정씨는 7월28~30일, 3일간 촬영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장소 섭외 문제와 장마로 촬영이 계속 미뤄졌다. 결국 9월5일, 17일, 19일에 걸쳐 영화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촬영 일정이 띄엄띄엄 잡히면 감독들의 부담이 커진다. 장비 대여비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촬영 장비의 하루 대여비는 약 20만원이지만 3일 연속으로 대여하면 약 40만원에 빌릴 수 있다. 정씨는 “연속으로 장비를 대여해야 할인을 받는데 그러지 못해 재정적으로 어려웠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코로나19와 장마로 촬영을 미루거나 추가촬영을 하는 날이 이례적으로 많았다. 최유림 감독은 “촬영 장비를 빌리는 데 예산 절반을 쓴다”고 말했다. 촬영이 길어질수록 재정 부담은 배가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 제공하는 교통비, 비가 올 때 사용하는 우산, 천막 등의 추가적인 소품 비용까지 생각하면 금전적인 부담은 더욱 커진다. 공금으로 내지 못한 지출은 사비를 써서 채울 수밖에 없다.

“추가촬영은 영화 퀄리티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최유림씨는 “시간이 지나면 계절이 달라지고 사람의 느낌도 조금씩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의 머리가 길고, 또 분위기가 날마다 달라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공=영화패 누에 ‘라 당스’ 팀
제공=영화패 누에 ‘라 당스’ 팀

‘라 당스’ 팀도 비를 맞으며 마지막 야외촬영을 진행했다. 송씨는 “여름의 계절감도 담아야 하고 의상도 여름 복장이다 보니 더 추워지면 배우들도 힘들어질 것 같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많았지만 ‘잊지 못할 경험’

제공=영화패 누에 ‘쇼쇼쇼’ 팀 
제공=영화패 누에 ‘쇼쇼쇼’ 팀 

‘홀떨섬’ 감독 남씨는 “장소 촬영 허가를 받았을 때 오히려 허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내년에 찍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과 촬영에 대한 기대감이 복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남씨는 “계획이 계속해서 틀어지다 보니 일이 잘 풀려도 기쁘기보다는 후에 일어날 일들이 걱정되고 의심됐다”며 당시의 감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이번 여름의 촬영이 다시는 없을 경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름방학 동안 신규 신청을 받지 않던 기숙사 탓에 지방에 사는 ‘쇼쇼쇼’ 팀원들은 홍대 근처에 집을 구했다. 길어진 촬영에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지만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최유림씨는 “한 달 내내 영화 생각만 했다”며 “순전히 좋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으로 보낸 한 달이 너무 즐거우면서도 색달랐다”고 전했다.

세 편의 영화는 종강 후 12월쯤 누에의 정기 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누에가 여성들을 다루는 영화를 많이 찍는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씨는 “‘홀떨섬’은 맞기도, 맞지 않기도 한 두 명의 여성이 만난 이야기”라며 “연대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전했다. 최유림씨 역시 “여자 주인공을 멋지게 그린다기보다는 일상에서 느끼는 찌질한 감정들, 사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겨울 누에가 만든 3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겨울을 넘어’ 영화제는 10월 7~13일에 진행된다. 여성영화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에서 온라인 스트리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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