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초등학생 때 숙제로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선생님께 혼나지 않으려 학교에 일찍 도착해 화장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서 쓰기도 했다. 급한 마음에 글자는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급작스레 사춘기가 찾아온 중학생 땐 겪은 일보다 명언을 기록했다. 남이 한 한마디에 그날들의 감정이 함축돼 있었다. 고등학생 땐 대학이라는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스터디플래너의 작은 칸 안에 나를 욱여넣고 채찍질했다. 그랬던 나는 성인이 됐고 오로지 100% 자의로 일기를 쓸 수 있게 됐다. 나의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순간의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목적도 가지각색이다.

유구한 일기의 역사에서 누군가에게 일기를 보여줄 생각을 해본 적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 블로그에 일기를 공유한다. 사람들은 나의 하루에 공감을 하기도, 위로를 보내기도 한다. 사실 사적 공간인 일기를 공유하는 것은 인터넷의 발달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루의 감상을 책으로 묶어 출간하거나 작게는 친구들과의 담소에서 공유한다. 들려주려 하는 공급자와 엿보고 싶어하는 수요자는 시대가 지남에도 그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매체가 발전하며 그 형태만 달라진다.

종이도 ‘뉴미디어’였던 시대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요즘 것들은 외우지 않고 적어 다닌다’며 종이에 글을 쓰고 간직하는 새로운 풍조를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매체는 진화하나 모든 변화는 상대적이다. 과거에 비해 새롭고 미래에 비해 구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흘려보내거나 따라 흘러갈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변하지 않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

Z세대의 ‘일기 공유’ 이면의 변하지 않을 ‘WHY’를 생각해본다. 타인의 하루를 관찰하다 보면 그의 삶이 부럽다가도 어느 순간 큰 위로를 받는다. 그가 나보다 돈이 많든 적든, 좋은 집에서 살든 아니든 똑같은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위로 받는다. 그 사람이 자기 자신과 나눴던 대화가 하나의 발화자로 변해 나에게 또다시 말을 건넨다. 오롯이 혼자 있을 때 건네 받는 이야기가 꽤 큰 힘이 된다. 특히 혼밥, 비혼처럼 혼자가 될 상황에 처해지고, 그런 상황을 선택하려는 세대에게는 말이다. 대화를, 소통을 하고 싶도록 태어난 우리는 계속해서 이 행위를 이어갈 것이다.

공유자의 입장에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브이로그를 찍고, 블로그에 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단지 쇼잉(showing)을 위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종이가 아닌 유튜브에 기록한다고 그 내용이 가벼워지거나 보여주기식 삶만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일기는 인기나 반응이 없어도 괜찮은 콘텐츠다. 내용보다 쓰는 과정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브이로그에 반응이 없으면 아쉽긴 하지만, 들인 시간이나 노력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100을 투자해서 100+a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나에게 건네는 대화인 일기는 그게 가능하다. 대화의 시도 자체에서 100을 회수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삼삼한 위로를 받는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일 테니, 당신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를 썼을 때 비록 반응이 없어도 충분히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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