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나는 14살에 성장통의 정점을 찍었다. 시도 때도 없이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생각들을 차분히 곱씹어볼 여유는 없었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정제된 말로 표현하기엔 아직 미숙했다. 결국 나를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중2병’이란 말로 뭉뚱그렸다.

이화로의 입학은 내 수험생활의 해피엔딩이자 스무 살의 첫 페이지였다. 집을 벗어난 자유, 새로운 사람들. 자유롭고 행복했던 일상도 잠시 ‘중2병’을 1년 일찍 앓았던 탓일까. 나에게 ‘대2병’은 1학년에 찾아왔다. 대2병은 다수의 20대가 인생에서 두 번째로 겪는 성장통의 대명사가 됐다. 2019년 4월 잡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대2병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문항에 64.6%의 대학생이 ‘그렇다’라고 답한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성장통이라는 과정 안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타인과의 비교였다. 이전까지 소신 있고 당차게 산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아왔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하염없이 작아졌다. 마음먹고 조금만 열심히 하면 결과가 그 이상으로 돌아왔던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교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이 사회 안에서는 그저 대학생1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더 뛰어난 벗들뿐이었고,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내일을 준비하는 주변인들을 보며 나는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 채찍질했다. 입시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보상심리로 매일 술과 함께하는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남는 것은 허무함 뿐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꼭 하려고 적어뒀던 리스트에 엑스가 늘어남에 비례해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던 나를 다시 세우기까지 2번의 계절이 바뀌어야 했다.

대학교 2학년이 돼, 이제는 주변의 많은 이들이 나와 함께 대2병을 앓고 있음을 실감했다. 다음 술은 뭘 시킬지, 내일 해장은 뭐로 할지 정도로 열띤 토론을 하던 우리가 앞으로 뭐로 밥 벌어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에 한숨과 어색한 적막으로 무거운 공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진지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던 동기부터 인스타 스토리에 가볍게 대2병인 것 같다며 글을 올리는 동기까지 모두 제각각의 방식으로 또 다른 성장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를 이겨내고 있겠지.

이 글을 쓰면서 작년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대2병을 어떻게 견뎌냈더라. 아마 무작정 학회와 동아리에 가입해 사람들 사이에서 바쁘게 살면서 자연스레 치유되지 않았나 싶다. 새내기 시절, 날마다 함께 술에 취하며 만났던 사람들 중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진 자들과 일상을 나누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줬던 것 같다. ‘중2병’은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면 ‘대2병’은 해답을 빨리 찾길 재촉했다. 두 녀석 모두 사람의 혼을 쏙 빼놓긴 매한가지였지만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엔 반박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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