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날 싫어해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내게 말했다. 담담하게 나온 아이의 말에 정말 많이 놀랐다. 사랑만 받으며 커야 할 나이에 미움을 먼저 알아버린 아이의 말이 아프게 느껴졌다. 최근 천안 아동학대 사건의 1심 선고 내용을 담은 기사를 읽으며, 문득 이 말과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올해 겨울, 지방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일주일간 방학 캠프를 진행했다. 그곳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참 피곤한 친구였다. 프로그램 중 친구와 싸우는 건 기본이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욕을 마구 내뱉었다. “친구와 싸우지 마라”, “친구한테 욕하면 나쁜 어린이다”라며 몇 번을 타일렀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프로그램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게 사사건건 제동을 거니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통제되지 않는 아이에게 점점 지쳐갈 무렵, 아이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됐다. 아이는 가정에서 아버지로부터 심각한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마구 내뱉던 생소한 욕들은 모두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가정 내에서 받은 상처를 본인보다 약해 보이는 친구들에게 분출하고 있었다. 아이는 말했다. “아빠가 술만 먹으면 욕을 해요. 아빠는 나를 싫어해요.” 그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참 많이 고민했다. 고민 끝에 위로하기 위해 몇 마디 답을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상처가 됐을까 반년이 지난 오늘에도 마음에 걸린다.

아이와의 만남은 내가 ‘아동학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부모의 폭력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직접 확인하니 아동학대는 단순한 ‘폭력’을 넘어서 아이의 인생을 죽이는 ‘살인’과 다를 바 없단 생각이 들었다.

보통 아동학대의 주체를 떠올릴 때 부모를 떠올리긴 쉽지 않다. 부모는 아이의 보호자이자 피를 나눈 가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외로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부모로부터 발생한다. 보건복지부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가정 내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는 2만3883건으로 전체 사례의 79.5%를 차지한다. 또한 학대 행위자의 75.6%(2만2700건)가 부모이다. 2019년 한 해 3만45건의 아동학대가 발생한 것을 고려할 때, 굉장히 많은 아동학대 사건이 부모로부터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6월, 아동학대 관련 기사들이 포털사이트 메인 페이지를 장악했다. 계모가 9살 아동을 가로 44cm, 세로 60cm의 작은 여행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천안 아동학대 사건은 많은 사람을 분노케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쇠사슬로 묶어 집에 가두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을 지지는 등 계부와 친모의 학대로부터 탈출한 창녕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됐다. 연달아 발생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충격을 줬다.

이렇게 끔찍한 사건들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폭력이 훈육으로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아동학대 관련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법 제915조가 부모의 징계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아동학대 판결에 있어 걸림돌이 된다. 또한 아이가 사망하지 않는 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2018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법원에 넘겨진 이들 중 46.5%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27%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13.6%에 불과했다.

처벌은 물론,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부 정책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 방지 대책’(2016), ‘아동학대 보완 방지 대책’(2018) 등 꾸준히 정책을 보완해 나가곤 있지만, 이들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그 예로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아동 보호 전문 기관의 수를 들 수 있다. 아동 보호 전문 기관은 전국에 68곳으로, 매년 발생하는 아동학대 수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 그중 26곳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다른 도의 경우 평균적으로 2~4개뿐이라 실질적으로 학대 피해 아동을 돌보기엔 역부족이다.

연달아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또다시 대책을 마련했다.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이 바로 그것이다. 아동학대 처벌을 어렵게 하던 징계권 개정 또한 고려한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여론에 휩쓸려 땜질식으로 정책을 마련할 것인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을 아동들을 위해선 여론에 휩쓸려 급히 만든 대책이 아닌, 실효성 있는 정책과 법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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