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타일에도 유행이 있다. ‘인생은 한 번뿐, 지금을 즐기자’는 YOLO를 거쳐 얼마 전까진 소확행, 힐링이 트렌드였다. 자기계발 서적은 이러한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매체 중 하나다. 2010년대 초반에는 ‘-에 미쳐라’ 식의 책이 인기를 끌며 전 국민의 열정적 삶을 장려했다. 열정을 젊음과 연관 지어 10~20대를 겨냥하는 문구가 홍수같이 쏟아지는 한편, 세대를 불문하고 공부에 미치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 역시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등을 넘어서 「공부하다 죽어라」로 이어지는 책들을 보고 다소 질려서 웃은 기억이 난다.

여하튼, 최근의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는 지난 십여 년간의 유행과 다소 다른 특징을 보인다. 과거의 트렌드가 힘든 삶 속에서도 행복을 찾고 긍정적인 생활을 도모하자고 외쳤다면, 최근에는 우울, 체념이 하나의 커다란 키워드로 부상했다. 코로나와 기후변화를 비롯한 낯설고 당황스러운 상황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해진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는지, 최근 들어서는 희망찬 도약을 격려하기보다는 코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잘 받아들이자는 태도가 주류가 됐다. 자기계발서들도 독자들을 응원하기보단 위로하는 식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부터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까지.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쉽고 간단한 문장들과 감성적인 일러스트를 담아낸 서적들이 서점을 가득 메웠다. 비슷한 부류의 유튜브 채널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뇌부자들’은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소개하고, 사연을 받아 간단한 고민 상담을 해주는 채널로, 20대와 30대 사이에서 소소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

삶의 방식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도 대중적인 기호가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나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이상적인 삶’의 기준에 따라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쉽게 바꾸곤 했다. 그러나 조금씩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도 꾸준히 유지되던 사회적 인재상, 이른바 ‘이상적인 인간’은 늘 비슷했다. 성실성, 도전정신, 열정 등을 요구하던 인간상은 그러한 개인들이 느끼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관해서는 비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우울은 극복하고 뛰어넘어야 하는 존재이며, 우울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 뒤처지는 것이라고 여겨지곤 했다. 우리 모두는 세대를 막론하고 오랜 시간 이러한 인재상에 맞추고자 애를 써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오래된 압박의 틈새로,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어떤 새로운 이상향이 아니다. 어떻게든 행복을 찾아야 했던 강박으로부터의 자유다. 힐링과 소확행이 지친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행복을 찾는 것이었다면, 이젠 행복을 찾지 않아도, 우울감에 파묻혀 있어도 괜찮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가만히 서서, 더 나아가려 애쓰지 말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가만 지켜봐도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열정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겐 이런 이야기가 너무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커다란 위기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잠시 쉬어 갈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가뜩이나 ‘인류 평균 대비 지나치게 부지런한 편’이 아닌가. 사람들에게 쉼과 휴식을 배우게 하는 최근의 트렌드가 유독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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