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입에 쉬이 오르내리는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내가 하지 않은 일과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일로 어떤 순간, 어떤 장소에서 누군가가 나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느낌. 나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성과 사명감, 그에 반비례하는 월급과 그마저도 아깝다는 사람들. 나는 3년 차, 여느 직장인과 같이 매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교사다.

‘멋있는데 예쁘진 않네요’, ‘선생님 머리 왜 잘랐어요? 혹시 탈코?’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학교에 가서 남학생들에게 들은 말이다. 유튜브에서만 보았던 사상이 그대로 투영된 남학생들과 말씨름을 하는 것은 교사가 된 첫해, 나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나와 힘겨루기를 하며 급식당번을 하기 싫어하던 아이는 체육 선생님의 등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어떠한 이벤트로 선물을 줘도 뚱한 아이는 남자 선생님이 한 농담 하나에 사르르 녹아 금세 무장해제 된다. 내가 100을 쏟아부어도 0인 느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밑 빠진 독조차 없고 물도 없는 느낌. 학교에 다니며 높아진 여성으로서의 자존감과 자부심이, 교사를 하면서 하나하나 휘발되는 감각. 내 존재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속이 텅 비어가는 와중에도 발은 무거워 떼어지지 않는 신기한 경험들. 타고난 나의 성별이 원망스러웠고 분했으며,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 또한 원망의 원망으로 되돌아오는,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음에도 계속 화살을 돌리는 나에게 죄책감을 또 느끼면서,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의 굴레에 갇혀 그렇게 첫해를 보냈다.

그다음 해 만난 아이들은 지옥 같은 첫해에 대한 보상인 듯, 그렇게 주변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제 직업을 흉보고 지낸 세월에 대한 일침인 듯 다가왔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웠고 내일이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유일한 숨 돌리는 시간인 점심시간마저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끊임없는 기 싸움으로 내 정신을 갉아먹지 않는 아이들. 업무에 지친 나를 이해해주는 아이들. 나와 관계를 맺어가는 것에 충실한 아이들. 나를 보는 눈빛에 적대감이 아닌 호감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들.  그때 알았다. 아, 너희가 나를 여기 있게 하는구나.

작년만 바라보면 이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첫해를 떠올리면 나의 내년이, 나의 내후년이 어떨지는 전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든다. 내가 나이가 들어 교단에 섰을 때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 짐작조차 안 가는 나의 미래. 그때의 나는 더 강해져 있을지, 아니면 어딘가 초연한 모습으로 내 자리 하나 채우는 것에 만족할지. 그렇게 살기는 싫은데. 나는 좀 더 이 세상과 옥신각신하면서, 나 자신과 끊임없이 더 나아지자는 다짐을 하면서, 내가 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그리고 잘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으면서 지내고 싶은데. 적어도 나에게 어딘가 쏟아부을 물이라도, 아래가 다 빠진 독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작년 1년 365일 중에 방학을 제외한 300일 정도를 지각하던 아이가 지난주 어느 날 급작스레 한 연락에 들떠 잠이 다 깨어버린 나의 모습을 보며, 그래 이런 순간들로 사는구나 싶은 마음도 잠시. 이런 작은 순간에 마음을 주면 어쩌냐고. 이런 작고 소소한 뿌듯함과 뭉클함만으로 정녕 그 지옥을 견딜 수 있겠냐고. 매일 나에게 되묻는다. 너 정말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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