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2020년 겨우내 이러한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생각의 근원은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이었다.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윤 작가는 2020년 1월31일, 개인 SNS를 통해 절필하겠다는 사실을 알렸다. 뒤늦게 알게 된 이상문학상의 불공정한 계약 내용 때문이었다. 윤 작가는 “그 상에 대해 항의할 방법이 활동을 영구히 그만두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 결정을 내렸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윤 작가의 글을 접하게 된 건 1학년 첫 전공 <한국현대문학의이해> 시간이었다. 윤 작가의 글을 처음 읽은 뒤로 홀린 듯이 작품을 더 찾아 읽었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그의 글을 읽을 때면 세상의 폭력성으로부터 보호받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빼곡히 필사한 적도 있었다. 글을 읽다가 엉엉 울기도 했다. 동기들도 모두 나의 ‘최애’ 작가가 ‘윤이형 작가’임을 알 정도로 윤 작가의 글을 정말 좋아했다.

그렇기에 절필 소식을 듣고 한동안 무거운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경하던 작가를 잃었다는 생각은 예상보다 나를 더 압도했다. 그의 결정이 이해가 갔지만, 한편으로는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겠다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뜻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는 없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학보 기자로 몇 개월을 보낸 지금, 그 마음을 감히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처음 기사를 쓸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 이 문장을 써도 될지, 다른 문장들과 잘 어울리는지, 혹은 이 문장이 인터뷰이의 내용을 잘 담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이처럼 문장 단위에서 이뤄지는 고민이 있다면, 작게는 조사 하나, 크게는 전체적인 개요에서 비롯되는 고민도 있다.

예컨대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활동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사례에 관한 기사를 썼을 때, 누구의 사례로 기사를 먼저 시작해야 효과적일지 꽤 오래 고민했다. 유학생과 인터뷰를 했을 땐, 그들의 말이 왜곡되지 않도록 열 번도 넘게 다시 확인하고 확인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눴기에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글이 매끄럽게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사를 쓰다 보면 글의 구조가 처음과는 아예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처럼 기사 한 편에 학보 구성원 모두가 공을 들이는 이유는, 기사를 읽을 독자를 가장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읽기 쉬운 기사, 기억에 남는 기사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한몫한다. 문장 한 줄이 독자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알기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기사를 완성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애정은 오히려 깊어진다.

여느 때처럼 기사를 마감하던 날, 문득 ‘윤 작가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문학과 저널리즘은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문장 하나가 큰 영향력을 지닌다는 사실은 같으니까.

윤 작가의 「붕대 감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이어 그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을 끝까지 열어 보이는 일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무참하고 누추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더 많지만, 실망 뒤에 더 단단해지는 신뢰를 지켜본 일도, 끝까지 헤아리려 애쓰는 마음을 받아본 일도 있는 나는 다름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꿈을 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꿈에서도 서로를 사랑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 사람들 역시 은밀히 이어져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돕고 있음을, 돕지 않을 수 없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꾸준히 그려왔던 윤 작가는 작품 바깥에서도 ‘연대’의 장을 세웠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윤 작가는 문장의 힘을 알았고, 조금 더 공정한 문단(文壇)을 만들기 위해 절필이라는 선택을 했다. 문인들이 걱정 없이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지 자신을 재차 돌아보게 된다.

요즘 나는 윤 작가의 작품을 ‘아껴’ 읽는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내 필사 노트는 그의 문장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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