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마지막으로 읽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방학 때마다 ‘이번 방학에는 책을 몇 권 이상 읽어야지’라고 다짐을 하지만 지킨 적이 없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를 해주셨던 학교 선배님께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선배님의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자요!”라고 대답했고, 감사하게도 한 MBC 기자님께서 쓰신 책을 선물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장래 희망을 묻는 칸에 ‘기자’라고 적었다.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기자. 이게 바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이상적으로만 보였던 내 꿈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던 시기에 선배님께서 보내주신, 김지경 기자의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는 큰 용기를 줬다.

책은 김지경 기자가 40대에 첫 앵커를 맡아 77사이즈의 옷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앵커 옷을 구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했던 그녀는 남자 앵커의 몇 배의 시간을 들여 메이크업과 헤어를 완성한다. 뉴스 멘트보다 카메라에 비치는 외적인 모습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변장하고 스튜디오를 들어가면 후배인 남자 앵커가 먼저 뉴스를 시작한다. 시청자 기준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앉아 멘트는 항상 남자 아나운서가 먼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김 기자는 용기내 변화를 요구했다. 이 조그만 ‘선례’가 다음 이 길을 걸을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직장 내 젠더 감수성이 과거보다 많이 향상됐다고는 하지만 방송국에서는 예외였다. 중년의 남자 앵커와 젊은 여성 앵커가 진행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남자 앵커가 안경을 쓰는 경우는 있어도, 여성 앵커가 안경을 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20대에 뽑힌 여성 앵커들은 각종 뉴스 메인을 담당하다 40대가 되면 더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이는 비단 아나운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워킹대디’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는데 ‘워킹맘’이라는 단어는 통용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해 워킹맘이 기자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기자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어 기사를 작성한다. ‘취재원 인맥 관리’도 업무의 연장이기에 잦은 술자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 8시 출근에 22시 퇴근이지만 사건, 사고라도 발생하면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육아와 병행해야 하니 워킹맘 기자는 하루를 48시간으로 살아도 부족하다.

이러한 현실을 접하고도 기자가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망설임 없이 ‘YES’라고 대답할 것이다. 성공보다 성장을 꿈꾸며 후배 여성 언론인을 위해 선례가 되려 하는 김지경 기자와 같은 분들이 있기에 두렵지 않다. 나도 언젠가 저 현장에 들어가 좋은 본보기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한 번에 깨부술 순 없지만 한 귀퉁이씩 금을 내다보면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희망해본다.

“현장의 매력 때문에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 ‘기레기’라는 욕을 듣고, 일은 힘들어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가장 중요한 일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궁금한 건 물어보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건 가슴 뛰는 일이다”라고 김지경 기자는 말한다. 내가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와도 같아서 가슴 한쪽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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