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언론정보·16년졸)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과·20년졸 ​​​​​​​삼성전자 ​​​​​​​선행AI솔루션팀
김지현(언론정보·16년졸)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과·20년졸
삼성전자 선행AI솔루션팀

‘Lost in translation’. 요즘 내가 처한 상황을 요약한 것만 같은, 이 표현의 100점짜리 번역문은 무엇일까?

‘번역과정에서 의미가 사라지다’. 원문에 충실하면서 의미도 잘 살았으니까 100점일까? ‘원문의 뜻이 살지 않는다’. 의미전달이 확실하지만 원문에는 ‘뜻’이라는 단어도 ‘살지 않는다’는 단어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85점? 어느 번역가는 같은 표현의 영화 제목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고 번역했다. 이 제목에는 몇 점을 주고 싶은가.

내가 온종일 모니터를 보며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 바로 위와 같은 것들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공지능 번역 대법관’으로서 인공지능이 뱉어놓은 번역문을 평가하고 점수를 주는 게 나의 업무다.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 일이 돌아간다. 개발자들이 새로운 인공지능 번역 모델을 만들어내고 문장을 넣어 번역을 시킨다. 번역 결과물이 나오면 원문과 비교해서 1점에서부터 5점까지 점수를 부여한다. 점수마다 오역, 누락 등 판단 기준이 있고 각 번역문이 어떤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분석한다.

인공지능의 번역문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는 인공지능 또한 존재한다. 같은 번역문을 두고 사람이 평가하는 것을 정성 평가, 인공지능이 평가하는 것을 정량 평가라 한다. 내가 평가하는 똑같은 문장들을 인공지능도 나름의 기준으로 (설명을 들어도 문과의 한계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이 두 평가 결과가 어떤 경향성을 보이는지, 서로 비슷하게 평가했는지, 어느 한 쪽의 평가가 높은지를 살펴보는 일도 해야 한다. 인간의 정성 평가는 기계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자연스러움, 유창성, 오류 허용 수준을 보완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게 나온 점수는 개발자와 임원들에게 전달되고 해당 인공지능 모델이 상품성, 경쟁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된다.

 

1점짜리도 현실에선 좋은 번역일 수 있다

점수 매길 수 없는 나의 가치에 확신 갖길

개별 문장에 5개의 점수 중 딱 하나를 골라 평가를 내리는 과정은 매우 효율적이다. 명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만 한다면 빠르게 번역 퀄리티를 평가할 수 있다. 수만 수천 가지의 다양한 이유로 잘못된 번역이 나오지만, ‘오역’이라는 두 글자짜리의 편한 명분이 있기 때문에 점수 주기 편한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기계 앞에서 그 자체로 의미를 명쾌하게 드러내지 못한 문장들은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좋은 번역일 수도 있는데, 기계는 맥락이나 드물게 있을 수 있는 예외적 상황 같은 것들을 전제하지 못한다.

통역번역대학원 수업시간에 동기들, 교수님과 함께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했던 과정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평가 방식에 조금 김이 새는 것도 사실이다. 2년 내내 논문, 대학 강의 등 어려운 텍스트와 씨름하기도 하고, 엉망진창인 원문을 정제된 번역문으로 심폐소생 시킨다고 용을 썼다. 특정 단어에 대한 나의 편견에 도전하고 그것을 재조정해 나가는 일, 눈으로 읽었을 때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 단어와 문장을 새로운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빈틈을 메워 나가는 일이 꽤 성취감 있었다.

취직하기 싫어서 선택한 번역과 잘 맞았다. 생각해보면 학부 시절까지 나를 둘러싼 정량 평가 방식에 너무 지쳐있었던 것 같다. 재수 1년, 무계획 휴학 1년, 초저금리시대 적금 이율 수준의 학점. 당시 나에게 나름대로 굴곡이 있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맥락이 있었다. 그러나 남들 눈은, 또 취직시장에서 나의 정량 성적표는 그런 것들을 다 따져서 반영할 리가 없었다.

반면, 번역은 더는 나에게 수치화된 내 모습을 요구하지 않았다. 너는 번역을 잘했으니까 100점, 너는 오역이 많았으니까 40점 같은 일은 없었다. 물론 성적 처리를 위한 형식적인 시험은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한 것보다 나은 번역을 찾아 나가기 위한 토론과 고민의 과정이었다. 번역에는 정답이 없었다. 번역이 나쁘게 나왔을 때, 왜 그런 결정을 했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번역한 이유를 설명하면 다른 사람들이 들어주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나가면서 내 번역이 더 나아지는 경험이 소중했다.

수치화의 대상이 되기 싫어 선택한 길에서, 역설적으로 정량 평가를 내리는 사람이 됐지만, 내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그러한 평가 방식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리고 빠르게 결정 내려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것을 다 고려하고 반영하지는 못한다.

당신이 정량 평가의 대상이 됐을 때, 보이는 점수가 낮다고 해서 혹은 배경이나 맥락이 반영되지 못했다고 해서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이의 기준에 맞춰 자기를 바꿀 자신이 없으면 그 기준을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 경우에는 그 방법이 나쁘지 않게 먹혔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과감하게 탈피해도 된다. 생각보다 별일 안 생긴다. 본인을 수치화하고 정량화하는 사회에 피로감을 느끼는 동문이 있다면 용기를 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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