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이대학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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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이 되면 ECC는 별을 수놓은 듯 열람실 불빛으로 장관을 이룬다. 밤새 그 자리를 지키며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대학 생활을 보냈을 1012명이 이제 이화를 떠난다. 졸업예정자(졸업생)들의 마음을 울린 ‘인생 수업’은 무엇일까. 본지는 졸업생에게 이화에서 들은 인생 수업을 물었다.

 

전공과 전혀 다른 학문을 배우다

졸업생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인생 수업은 사고를 확장하고 시야를 넓히는 수업이다. 특히, 졸업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전혀 다른 학문’을 접하며 색다른 경험을 했다고 입 모아 말했다. 

이수진(행정·11)씨는 김찬주 교수(물리학과)의 <현대물리학과인간사고의변혁>를 인생 수업으로 꼽았다. 이씨는 평소에 물리학에 관심 있던 문과생이었다. “물리학은 접근하기도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이 알기 쉽게 설명했어요. 살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는 일들을 전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물리학은 우리 삶의 저변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김찬주 교수의 수업 방식과 소통 방식을 장점으로 꼽기도 했다. “교수님은 다양한 수업자료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했고 학생들과 정확하고 빠르게 소통했다”고 이씨는 전했다. “대형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시험 전에 질문을 다 받아주고, 항상 위로의 말을 건네곤 하셨다”고 덧붙였다. 

고근영 교수(영어영문학과)의 <연극의이론과실제>는 이예빈(동양화·14)씨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연극은 이씨의 관심 밖의 분야였다. 하지만 “실제로 공부해보니 흥미로웠고 평소 얕게 알고 있던 지식이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또한 “수업에서 가상으로 연극 무대를 연출하고 실제로 연기를 하는 경험은 어디서도 못 해볼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고정관념이나 생각의 틀이 깨졌어요. 새로운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됐죠.” 김혜주(심리·16)씨는 김지혜 교수(호크마)의 <고전읽기와글쓰기>를 떠올렸다. 수업 도중 교수가 던지는 질문들은 김씨를 성장시켰다.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의 「소유냐 존재냐」는 김씨에게 가장 영감을 준 책이다. 김씨는 ‘소유물이 사람들을 소유하기도 한다’는 작가의 관점을 현대 사회에 적용했다. “우리는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소개하기 위해 좋은 학교에 가고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결국 소유물에 집착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통찰하고 표현하기 어려워지죠.” <고전읽기와글쓰기> 수업은 김씨가 소유물에서 벗어나 나를 표현하고 묘사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나를 깨우는 여성학을 배우다

여성학 역시 이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생 수업으로 회자됐다. 학생들은 의무교육과 고등교육에서 접할 수 없었던 여성학이라는 학문을 배우며 사고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 갔다. 

이예원(작곡·15)씨는 “가장 인상 깊은 수업으로 전희경 교수(여성학과)의 <여성과사회정의>를 고민 없이 꼽을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2020학년도 1학기에 추가학기로 이 수업을 들었다. 교수가 현 사회의 젠더 담론에 얽힌 문제를 제기하면, 수강생들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토론을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숙명여대 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입학 논란’이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 인식, 여자대학의 학생으로서 보는 현안, 젠더정체성에 대한 입장.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어요.” 이씨는 그날을 가장 열띠었던 날로 기억했다. 그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나와 충돌하는 부분, 새로운 시각을 모두 ‘배움’으로 소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은실 교수(여성학과)의 <여성학>은 ㄱ씨의 마음을 울린 수업이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 수업을 들으며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8학년도 2학기, ㄱ씨는 처음 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교수의 강의와 학생들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ㄱ씨는 강의를 듣고 학생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자신을 명확하게 페미니스트로 규정할 수 있었다. “수업 중간에 울컥하는 감정들을 많이 느꼈어요. 그런 감정들이 모여 나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가 됐죠.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규정지을 수 있었어요.” 

황정미(행정·15)씨도 여성학을 인생 수업으로 택했다. 황씨에게 강은주 교수(미술사학)의 <여성과예술>은 잊지 못할 수업이다. 그는 “많은 여성 작가를 접하고 정말 새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는 그가 유난히 눈을 번뜩였던 여성 작가다. “젠틀레스키가 그린 유디트(Judith·「구약성서」 외경(外經) 「유디트서」에 등장하는 여성)는 전혀 고혹적이지 않았어요. 진취적이고 힘 있어 보였죠. 아름답고 인상적인 작가와 작품은 많이 봤지만, 그 시대 속 여성 작가와 그의 작품은 처음 접했기에 더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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