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전·후기 온라인 학위수여식의 취소로 아쉬움이 크지만,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설렘은 여전하다. 8월 대강당과 ECC Valley에는 학생들이 학위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졸업을 즐기고 있다. 106년 전 이화의 첫 졸업식도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졸업생들의 긴장감과 벅차오름, 지인들의 축하가 있었다. 본지는 「프라이: 한국 여성 고등교육의 개척자」와 「여성을 넘어 아낙의 너울을 벗고」를 바탕으로 달라진 졸업 풍경 속, 최초의 졸업식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신마실라, 이화숙, 김애식(왼쪽부터). 제공=이화역사관
신마실라, 이화숙, 김애식(왼쪽부터). 제공=이화역사관

1914년 4월 1일 정동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학 졸업식이 열렸다. 대학과 졸업생 김애식 선생, 신마실라 선생, 이화숙 선생은 중학과 7회 졸업생들과 함께 식을 진행했다. 오르간의 행진곡에 따라 흰옷을 입은 학생들이 입장하는 가운데 세 사람은 검정 가운과 학사모를 쓰고 등장했다.

당시 여성들은 해외 유학을 통해서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교육에 대한 열망을 채워줄 국내 고등 교육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중등교육 담당 교사 또한 부족했다. 이에 이화학당장인 룰루 E. 프라이(Lulu E. Frey) 선생은 대학과를 설립하고 15명의 입학생을 받았다. 보통과, 중등과, 고등과를 이은 대학과의 탄생이었다.

15명으로 시작한 학생 중 3명은 첫 졸업생이 됐다. 한국 최초의 여성 졸업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모였다. 여성도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을 얻을 기회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자리였기에 대중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사람들은 함성을 터뜨리거나 눈물을 흘리며 한 단계 나아간 여성 교육의 현장을 축하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자인 최은희 선생은 당시 졸업식 풍경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손님들은 묵묵히 기립해 박수로 맞아 주었다”며 “감격해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의 영화 같은 날은 전국 여성의 흠모의 대상이 됐다”고 덧붙였다.

국내 유명인사와 외국 손님들도 참석했다. YMCA 전국연합회회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과 더불어 미국 감리교회 관계자들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특히 미국에서 온 몽고메리(Helen B. Montgomery) 여사는 영어와 우리말을 사용해 동양 여성의 교육에 대해 연설했다.

졸업식 전날에는 졸업생 3인의 축하 예배와 졸업논문 발표식이 진행됐다. 당시 대학과는 전공이 정해지지 않고 여러 교양 학문을 배우는 형식이었다. 자신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김애식 선생은 ‘교육요소로서의 놀이’, 신마실라 선생은 ‘한국미술탐구’, 이화숙 선생은 ‘미국 시인 롱팰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를 주제로 우리말과 영어를 사용해 발표했다.

프라이 선생은 이들의 졸업식을 올해의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뽑았다. 「프라이」 저서에 따르면 그는 “이 세 학생보다 더 우수하고 사랑스럽고 똑똑한 소녀를 배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과 제2회 졸업식. 제공=이화역사관
대학과 제2회 졸업식. 제공=이화역사관
대학과 졸업장(1924). 제공=이화역사관
대학과 졸업장(1924). 제공=이화역사관

첫 졸업식을 시작으로 이화학당 대학과는 1925년 전문학교로 바뀌기까지 총 2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1회에 걸쳐 졸업한 여성들은 해외 유학을 통해 지식인으로 나아갔다. 이어 교육, 여성, 기독교 등의 분야에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1회 졸업생 신마실라 선생과 이화숙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김애식 선생은 음악 공부를 이어나가며 이화의 초대 음악과장을 역임했다.

이화역사관 정혜중 관장은 당시 졸업식을 ‘감격’ 그 자체로 묘사했다. 그는 “식민지 초기이자 여성 교육의 불모지였던 조선에서 약 30년 만에 고등교육 과정을 밟은 이화 지성인이 탄생하는 순간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정 관장은 오늘날 이화의 기틀이 된 이화학당 대학과의 의미에 대해 덧붙였다. 그는 “1910년경 미국에서는 동양의 여성 교육, 특히 대학을 설립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다”며 “대학과 당시 여성 학사는 세계적 추세였고 이에 동참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여성 졸업생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관장은 “그동안 배출된 졸업생들은 근현대 한국 여성 리더로 성장하며 각 분야의 신화를 만들어갔기에 의미가 크다”며 “이화 졸업생이 곧 근현대 한국 여성의 역사임을 자부하게 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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