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INTP다. 내향적이고 직관적이며, 이성에 의존하고 인식적이라는 뜻이다. 이 유형의 큰 특징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없으며 타인과의 소통을 기쁨보다는 성가신 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군중에 있을 때 큰 피로감을 느끼고 인간관계에 서툴다. 내가 정확히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 사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었다. 특히 대학에 온 후, 어딜가도 사람이 꽉 찬 서울에서 이들을 매일 상대해야 하는 일상에 지쳐버렸다. 나뿐 아니라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이 이런 기분을 느낄 것이다. 더 많이 만날수록 상처만 늘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즐거움을 찾기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에서 더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부러 스스로를 그렇게 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되고, 몇 달 후 코로나19로 학교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얻은 깨달음은 지금껏 내 삶의 태 도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사람은 사람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한 외톨이가 일생일대의 목표였기에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온 마음을 다해 이를 느끼고 있다.

교환학생을 온 건 문화와 언어를 체험하고 싶어서였다. 파견 준비를 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평생 살아온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언어도 배우고.” 하지만 문화와 언어 모두 결국은 사람에게 밴 향기와 같음을, 향기를 맡으려면 이를 발산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어야 함을 이곳에 와서 뒤늦게 깨달았다. 22년 밖에 안 되는 내 삶에서 나름 인상 깊은 여정, 여행을 떠올려봤다. 모두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은 친구들과 밤에 라면을 먹은 기억으로, 베를린 여행은 김치찌개 집에서 만난 독일 할아버지와의 대화로, 학보사 생활은 그간 만났던 인터뷰이들의 눈빛으로 내 추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으면서 ‘혼자’ 위주의 삶을 꾸려가려던 내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물론 나는 아직도 개인주의 신봉자다. 하지만 개인주의라는 개념도 타인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전염병은 사람이 사람에게 감염시킨다. 코로나19로 인해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격리’ 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고통이 여기서 비롯된다. 나와 모두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멀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와 생각을 교류할 ‘사람’이 모두 학교를 떠나 없으니 나는 교환학생이라고 불릴 수 없는 셈이다. 실질적으로 미국에서의 교환 학기는 한 달 전에 끝났다.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해 거기까지 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교환학생 생활이 허무하게 끝나 아쉽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내 가치관을 통째로 바꿔 버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은 모순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이 기나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모두가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내 삶의 사람 냄새에 드디어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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