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지난 1월 민음사 출간 잡지 <한편> 1호의 글 ‘페미니즘 세대 선언’에선 오늘날의 청년 세대를 ‘페미니즘 세대’라고 명명했다. 청년 세대가 페미니즘과의 관계 설정 없이는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청년 세대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정립할까. 본교 학생들은 다양한 여성학 관련 교양 과목들을 수강하며 여성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구체화한다. 본지는 다양한 여성학 관련 교양을 수강한 이화인을 인터뷰해 처음 접한 ‘여성학’이 무엇인지, 수업을 통한 생각의 변화에 대해 질문했다.

 

 

 

“페미니즘은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해 결국 모두를 감싸 안아요. 한 발짝씩 천천히 나아가며 거대한 변화를 이뤄내는 가장 역동적인 거북이 같아요. 느리지만 빠르게, 빠르지만 천천히 사회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승지(사복·16)씨는 과거 여성학이 개인의 삶을 제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가정적인 삶이나 보조와 같은 책임감이 적은 직책을 원할 수 있는데, 여성학은 그렇지 않은 삶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학기 <여성의몸과창조적움직임>을 수강하면서 한씨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한씨는 수업 중 다뤘던 ‘여성의 치마’를 예로 들었다. 치마를 입는 것은 몸을 치장하는 즐거움으로 포장되지만, 걸음의 보폭을 좁게 하고 다리를 벌리지도 편하게 눕지도 못하게 한다. 치마의 착용을 통해 여성에게 사회가 원하는 규칙을 내재화시킨다는 것이다.

수업 이후, 그는 여성학이 기존 사회 속 보이지 않는 차별을 고찰하고 차별에 맞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연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씨는 여성학을 ‘당연시했던 것에 질문을 던지고, 다시 현대에 적용해 바라보는 실천적 학문’이라 정의했다.

한씨처럼 본교생들은 여성학 관련 교양 과목을 수강하며 여성학을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다. 본교엔 여성학과가 있어 <젠더와역사>, <성문화연구>, <노동과젠더>, <글로컬시대의아시아여성> 등 여성학의 소주제를 깊이 다루는 다양한 교양 과목이 있다.

 

여성학 교양을 수강하며 생각의 틀을 깨다

“여성학은 알에 갇혀 있던 제 사고방식의 세계를 뒤흔들고, 깨부수고, 더 커다란 세계를 보여줘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투쟁하려는 동력의 근원이 바로 여성학인 것 같아요.”

이번 학기 <노동과젠더>를 수강하는 이어진(심리·20)씨는 본인에게 다가온 여성학의 모습을 「데미안」의 구절을 인용해 표현했다. 그에게 여성학은 남성 중심적 진리나 가부장적 편견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기존에 알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역동적인 학문이었다.

이씨의 말처럼 수강생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사고방식을 깨부수며 여성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발전시킨다. 강은솔(화학신소재·19)씨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에 거부감을 느꼈다. ‘여자가’, ‘여성스럽게’라는 말에 반감을 품은 적도 많았고 결혼을 낭만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추구해왔던 삶의 태도가 페미니즘이었다며,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겨 여성학 교양인 <젠더와역사>를 수강했다.

수업을 들은 후 강씨는 평소 불편하다 느꼈던 언행이 실제론 더욱 끔찍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강씨는 좋아하던 예능을 포함한 TV 프로그램의 시청을 편히 하지 못하는 ‘프로불편러’가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방향이 옳다고 믿는다. “(불편해하는 일이) 피곤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프로불편러가 될 거예요.”

<여성과예술>을 수강하는 김혜상(경영·17)씨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미술 작품을 바라보며 “왜 여성은 위대한 미술가로 여겨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김씨는 “행복한 어머니, 파괴적 여성, 타락한 여성상 도상 등을 배우면서 끊임없이 여성의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이 경계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이 관점이 오늘날까지 반복돼 여성은 작품 속 모델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여성과예술>을 통한 여성주의 시각을 접한 후, 김씨가 세상을 보는 시각 또한 넓어졌다. 그는 “사물을 하나의 관점을 넘어 여성학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여성이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인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학을 “나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학문”이라 정의했다. “(여성학은) 남성 중심사회에서 내가 어떻게 사회화됐는지 깨달으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들어줘요.”

 

수업을 넘어 여성 문제의 해결을 고민하다

<법과젠더> 수업을 듣는 이지인(융합콘텐츠·20)씨는 수업 내용 중 성별영향평가를 통한 법 개정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63조는 남성만을 ‘근로자’로 상정하고 있었다. 이는 법의 맥락상 ‘근로자’에게 아내가 있음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나름 성평등적 사고를 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빠르게 이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성별영향평가 활동 이후, 이씨는 더 나아가 여성 문제 해결을 고민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광고나 홍보물 제작 시에 양성평등 관점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기존의 용어들은 ◆성인지 감수성을 지닌 용어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생각해요.”

여성학 수업은 기존의 생각뿐만 아니라 삶의 목표까지 바꾸기도 한다. <노동과젠더>를 수강하는 이어진씨는 성별에 따라 노동 종류가 나뉘는 ‘성별 분업’을 배우며, 여자는 수학과 공학에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싶었다.

그렇게 이씨는 어려워 보이던 컴퓨터공학 복수전공 이수를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여자라서 못했던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발버둥으로 거대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던 이씨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 “내 목표가 너무 높고 허황돼 보여도 현실과 타협해 일찌감치 목표를 접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개개인이 이런 소명을 가지고 노력해야 그 다음엔 또 다른 개인들이 연대하고,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지인씨는 여성 문제의 해결을 위한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말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의견을 접하며 저 또한 편견이 있었어요. <법과젠더>를 수강하면서 페미니즘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라 생각하게 됐어요.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의 변화를 위해서 말이에요.”

 

◆성인지 감수성 :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을 인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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