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심드렁한 기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을 때가 있다. 

박혜진(국문·10년졸) 민음사 편집자
박혜진(국문·10년졸) 민음사 편집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한 번씩 이렇게 늪에 빠진 것처럼 마음이 푹푹 꺼질 때, 내 몸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짐작조차 안 되는 근본 없는 감정들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사방에서 달려든다고 느낄 때, 부지불식간 잠식해 오는 무력감이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어서 나는 차라리 손쓸 도리가 없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도망가 버리고 만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감정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 쪽을 택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가 않다. 세상에, 고통의 방향도 관성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벗어나기 위해 방향을 바꾸기는커녕 차라리 과장된 우울로 나 자신을 몰고 가는 것인데, 구석진 곳으로 밀어붙여 그 안에 갇힌 내가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면 그 때문에 멈춰 있는 거라고 스스로의 고통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이건 악순환이다. 그리고 속임수다. 밀어붙이기 전부터 사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멈춰 있는 자신에 대한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를 더 고립시켜 가며 불행의 조건을 완성한다고 써놓고 보니 꽤나 잔혹한 일처럼 보인다. 세상에, 이건 너무 파괴적이잖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한 번씩 늪에 빠진 것처럼 마음이 꺼질 때는 이런 잔혹함에 자신을 방치해 버리는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타인을 속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자기기만은 감각에 속는 착각과 다르다. 자신을 속여서 얻을 수 있는 게 뭐라고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까. 그럴 때 나는 꼭 남아 있는 나날」(민음사)에 나오는 집사 스티븐슨을 닮은 것 같다.

스티븐슨은 자기 일에 충직한 영국 집사다. 지금은 부유한 미국인의 소유가 된 저택 달링턴 홀에서 달링턴 경을 위해 평생을 집사로 일했던 스티븐슨. 저택의 새로운 소유자가 된 주인이 기념 삼아 휴가를 주자 스티븐슨은 생애 첫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일주일 동안 이어진 여행에서 스티븐슨은 자신이 모셨던 달링턴 경이 1930년대 유럽 사회의 중심에 있었고 그 중심이란 실로 폭력적 세계의 한가운데였으며 자신이 충성을 다했던 사람이 결국은 악한 세계에 부역한 폭력의 축이라는 사실과 대면한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감정도 접었고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그에게 지난 삶을 통째 부정하는 이런 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러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그에게 “남아 있는 나날”은 이제 별로 길지 않다. 스티븐슨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누군가에게는 현실과 타협하는 선택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진실을 부정하는 선택일 테지만 어떤 사람도 스티븐슨으로 하여금 자부심 넘치는 지난 삶을 버리라고 말할 수 없다. 나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도 않고,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나날”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공간에 속하는 경험

타인의 삶과 내 삶 사이의 시차는  

고립에서 나와 이동하게 하는 힘

실은 나 자신이 못 견디게 지루했을 뿐이다.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 있을 때 자신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몰고 가는 이유 말이다. 그럴 때 나는 읽지 않을 때의 나와 겹친다. 읽고 있지 않을 때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자세가 마음 어딘가를 녹슬게 하고, 그 녹슨 곳에서부터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읽는 동안 나는 잠깐 나를 규정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타인에게 속한다. 그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의 삶에서 나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감지하게 되는 시차는 우리의 인생이 떠나고 도착하며 이동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 사이에 존재하는 시차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다름 아닌 책을 읽는다. 나의 눈과 귀로는 결코 보고 들을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와 이전의 나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은 길을 꿈꾼다. 스티븐슨이 지난 자기 삶에 대해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는 걸 보고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고립에서 벗어나는 데 조금 도움이 된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면 이 길밖에 안 보이지만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보면 여기서 안 보이던 길이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5년 전에 내가 편집한 책 중에 「한국이 싫어서」(민음사)가 있다. 당시 나는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한 기대에 불씨가 꺼져 가고 있는 걸 느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서 괴로웠고 일과 내가 계속 함께할 만한 사이인지 알지 못해 무서웠다. 그때 이 소설을 만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계나’라는 탈출하는 인간을 만난 건 아무리 생각해도 행운이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십 대 여성인 계나가 이곳에서의 익숙한 불행을 떠나 저곳에서의 낯선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한국인 여성이 호주로 이민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말이니 쉽게 하지만 가족과 연인을 비롯해 자신이 속해 있던 세상을 뒤로하고 익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로 탈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절대로 계나처럼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행복을 돈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계나는 행복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으로 구분하며 자신을 현금성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계나의 시선에서 보니 내 생각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던 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성취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성취한 기억으로 현재를 버티는 사람, 즉 자산성 행복의 자산이 높은 사람이었던 거다.

사회생활 이후 가장 큰 전환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불행해진다 해도 별로 무섭지 않다. 도망가면 받아 줄 책이 있으니까. 스티븐슨에서 계나까지, 내 인생을 비춰 줄 수많은 인생들이 거기 있으니까.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

*민음사에서 한국문학팀 편집자로 9년째 일하고 있다. 밀리언셀러 '82년생 김지영’의 편집을 맡아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이밖에 ‘딸에 대하여’ ‘한국이 싫어서’ 등 수많은 책을 편집했고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편집도 담당한다.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매일 빠짐없이 기록한 독서 일기를 엮은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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