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집 주변을 산책하다 만난 하늘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해질녘 집 주변을 산책하다 만난 하늘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당신은 어떤 교환학생 생활을 꿈꾸는가? 나는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한국에서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학문을 바라보며 공부하고 싶었다. 물론 여행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주변 국가를 여행하기 위해 계획도 잔뜩 세웠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사라졌다. 나는 집 안에만 있는 중이다.

코로나19가 유럽을 휩쓸고 있다. 현재 내가 있는 독일은 확진자가 7만 명이 넘었다. 관공서와 식료품을 제외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교환학생 칼럼을 써달라고 제안을 받았을 때 굉장히 고민됐다. 나를 교환학생이라고 말하기 어색하다. 아직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유학생과 교환학생들이 하나둘 귀국하고 있다. 타지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서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가 2~3천 명씩 늘어나는 이곳. 독일 마르부르크 한국인단톡방에서는 귀국 여부를 조사했다. 결과는 반반. 반은 돌아가고 반은 남아있는다고 한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와 한국에 가야하는 이유를 표로 정리해가며 고민했다. 정말5분에 한 번씩 결정이 바뀌었다. 온갖 이유들이 줄다리기하며 ‘내가 더 중요해!’ 외치는 기분이랄까. 무엇을 선택하든 최악이었다. 내가 그려온 교환학생 생활이 아니었다. 갑자기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너무 속상해 펑펑 울었다. 일주일 넘게 고민했지만 쉽게 결정이 서지 않았다.

마르부르크가 한눈에 보이는 성 위에서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마르부르크가 한눈에 보이는 성 위에서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결국, 나는 독일에 남아있다. 놀랍게도 내가 남겠다 다짐한 이유는 굉장히 사소했다.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산책을 하는 와중이었다. 산책길에서 이웃의 강아지를 봤는데 내게 달려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강아지 주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행복하다. 내가 꿈꿔온 외국 생활은 이런 게 아닐까?’ 계획을 모두 실천할 수 없을지라도 행복하지 말란 법은 없다. 표로 정리한 이유들은 모두 상관 없어졌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면 새와 청설모가 나무 위에서 경주한다. 마당에서 주인아주머니 딸과 함께 땅을 파고 꽃을 심는다. 해먹에 누워 평소에 관심도 없던 책들과 논문들을 집중해서 읽는다. 어제는 기타를 주문했다. 연주하고 싶은 악보들을 찾느라 시간이 꽤 갔다.

일상에 위안을 주는 풍경이 있기에

이 사소한 시간이 내게 너무 소중하다. 분단위로 쪼개 살던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여유로움이다. 아마 독일에서도 여행을 가거나, 학교생활을 했다면 볼 수도 할수도 없는 일들이라 생각한다.

내가 미리 세워둔 계획은 코로나19로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모든 게 멈추자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오더라. 나는 조금 더 독일에서의 생활을 즐길 것이다. 물론 안전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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