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익을 봤다. 나오면서 헛웃음이 ‘껄껄껄’ 나왔다. 시간이 모자랐다. 영어 공부를 한 시간보다 ‘토익 잘 보는 팁’을 찾아본 시간이 더 많으니 그러하지. 아마 목표 점수를 위해서는 시험을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요행을 바라다가 망한 꼴이다.

학보사 들어오기 전 내 모습이 딱 이러했다. 번역기 사용해 영어 에세이 쓰고 좋은 점수 받기를 바랐고, 수업 때 졸고 시험 전날 족보 보면서 A+이 나오기를 바랐다. 결과는 참으로 썼다. 요행은 통하지 않았다. 아직도 새내기 시절 망친 학점을 복구하고 있다.

새내기 막바지, 학보사에 들어왔다. 첫 기획안을 쓰며 내 머리카락을 뽑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엽다. 가만히 앉아 기삿거리를 생각하니 당연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나를 자책했다. 첫 회의를 마치고 부국장님께 말했다. ‘저 학보사 못하겠어요... 나가면 안 될까요?’ 그때 붙잡아준 부국장님께 참 감사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갔고, 나는 부국장으로 퇴임한다.

4학기 동안 80개의 기사를 썼다. 한 주 한 주를 허덕이며 보냈다. 욕심은 또 많아서 재밌는 취잿거리가 보이면 바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기사를 마감하는 날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후회했다. 솔직히 모든 기사를 열심히 취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주는 빨빨거리며 취재했지만, 때로는 ‘적당히’, ‘기사 쓸 정도로만’ 취재했다. 이 때문에 월요일 신문이 나오면 너무 뿌듯해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을 때도, 신문을 모두 찢고 싶을 정도로 민망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사는 정확했다. 내가 취재를 열심히 했는지, 대충했는지 투명하게 다 보였다.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은 요행을 부릴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성격은 조금씩 변했다. 기획안을 내기 위해 취재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성격을 개조해가는 큰일이었다.

취재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를 입에 붙이고 살았다. 취재원을 구하기 위해 팀플에서 처음 본 사람, 인스타로만 아는 사이에게까지 연락했다. 부탁을 정말 못하는 성격이라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욕도 참 많이 먹었다. 익명의 쪽지를 보냈다가 ‘왜 연락하느냐’ 대뜸 화를 냈다. 지나가는 사람 붙잡았다가 사이비 취급을 받은 적도 있다. 수업도 많이 빠지고 인터뷰하러 가거나, 취재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내게 “기자이기 전에 학생”이라고 매번 말했지만 당장 나는 기사를 마감해야 했다.

‘우라까이’를 하지 마라. 최근 알게 된 기자의 상태 메시지였다. 우라까이는 기자들의 은어로, 다른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적당히 바꿔 자신의 기사로 만드는 행위다. 상태 메시지를 보니 내심 2년의 생활이 뿌듯해진다. 학보사 기자를 하며 단언컨대, 우라까이를 한 적이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귀찮지만 소중한 단계 팩트 체킹 데스크(Fact Checking Desk · FCD)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FCD를 끝내지 않으면 완고를 하고도 면에 기사를 싣는 ‘공정 과정’에 넘어갈 수 없었다.

‘열심히’ 취재하기.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다. 기획안을 고민만 했던 나는 학보사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이지만, 학보사가 끝날 무렵 생각해보니 이는 내게 너무나 귀중한 자양분이 됐다.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끝나갈 무렵이 되니 다시 이전의 기미가 슬그머니 보이고 있다. 토익 시험을 보고 나온 뒤 아차 싶었다. 그래서 경계하고 있다. 요즘 매일 기출 문제를 푸는 중이다. 다시 원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학보사를 나가도 나는 계속 취재하고 싶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고 싶다. 모두 기대하시라. 제 바이라인은 이대학보가 아니더라도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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