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준형(중문‧08년졸)
주준형(중문‧08년졸)

‘그 회사 사장님이 대선 출마하는가’.

지난해 여름 이직 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나의 지난 경력을 아는 분들의 상상력이었다. 이직 전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남짓 정치의 글과 말을 만드는 일을 했다. 국회에서, 정당에서, 지방정부에서 스피치 라이터(연설문 작성자)로 일했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캠페인을 경험했고, 다 같은 일로 역할을 했다. 필력이 좋다기보다 운이 좋았다.

대학 내내 가장 많이 했던 일이 영화 보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열린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DIF)에서 상영한 거의 모든 영화를 다 보던 시절이었다. SBS 조욱희 PD처럼 ‘용서 그 먼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라이따이한의 눈물’ 등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PD 시험은 공채가 몇 없고, 대학은 졸업했고, 용돈은 벌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친한 선배가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며 국회 인턴을 하는 것을 보고 어느 3선 의원의 방 인턴 공채에 지원했다. 그렇게 정치에서 일하게 됐다. 어린 시절 과하게 읽은 위인전 탓도 있는 것 같다.

의사, 벤처기업가, 교수, 대권후보의 삶. 검사, 시민운동가, 소셜 디자이너, 3선 서울시장의 삶.

좋은 삶 위에서 세상을 경험했다. 스피치 라이터는 흔히 고스트 라이터라고 이야기한다. 내 이름이 아니라, 한 사회를 대변하고, 한 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이름으로 모든 메시지를 발신하기 때문이다. 무한 책임감을 가진 정책 결정권자의 생각을 대신하려 했고, 가장 이상적인 리더의 언어를 상상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국민의 삶을 선망하고, 나라의 삶을 귀하게 생각했던 어느 전직 대통령의 생각이 좋았다. 늘 쓰고 싶었던 문장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 야당대표의 연설을 썼고, 촛불 집회 때 야당시장의 메시지를 만들었다. 운이 좋았던 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무기력과 우울함도 쌓였다. 내가 가진 것을 다해도,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국회 본청을 둘러싼 세월호 유가족들의 숨죽인 통곡을 육성으로 들었고,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안산에서 국회까지 행진해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3년 후 매 주말마다 촛불집회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나의 직장이 거기에 있었고, 나의 일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현장을 경험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끝내고 새로운 선택을 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내려와 내 이름으로 내 나이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해야만 잘 할 수 있는 일을 만났다. 차량 이용방식을 소유가 아닌 공유로 혁신한 플랫폼, 차량 공유라는 새로운 습관과 문화를 만든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쏘카(Socar)’다. 이직 후 두 번째로 많이 들은 질문이 있다. ‘너는 거기서 도대체 무얼 하는가’.

새로운 정치가 아니고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일을 한다. 쏘카는 2011년 만들어진 기술기반의 소셜벤처다. 1만대의 공유차량으로 12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29만평의 주차장공간을 줄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공유차량 1대가 소유차량 9대를 대체한다. 현재는 550만 회원의 차량 공유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다만 우리 법과 제도에 공유차량이라는 개념이 없어 렌트카 업체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렌트카 업체와 완전히 다르다. 여행에서 빌리는 차량이 아니라, 일상에서 공유하는 차량이다.

이 혁신적인 회사가 지난해 시작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이용자 편익 중심의 더 나은 이동문화를 만든 ‘타다’다. 11인승 이상 승합차는 기사알선이 가능하다는 여객운수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타다 플랫폼이 드라이버와 이용자를 연결한다. 쏘카는 운전하는 분들을 위해, 타다는 운전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차량을 소유하지 않아도 이동권을 보장한다. 나는 정부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회를 설득하는 일을 했던 경험 덕분에 인공지능과 데이터 플랫폼회사에서 차를 공유하는 습관과 문화를 설득하는 캠페인을 하게 된 셈이다.

이직 초반에는 앓았다. 정치의 언어와 산업의 언어가 달랐다. 또 있었다. 정치인을 매개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과 기업을 매개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언론이 다르게 이해했고, 사회가 다르게 받아들였다. 소셜벤처라는 새로운 세계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쏘카를 포함한 소셜벤처는 이익극대화가 아닌 사회혁신을 소명으로 삼고 실현하는 회사다. 주주이익극대화가 아니라 사회전체구성원의 이익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만이 아니다. 누구나 변화의 주체가 되는 지금 시대에는 소셜벤처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직이 아니라 전직을 했지만, 사회변화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은 같다.

기술이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부와 가치를 창출한다. 예컨대 타다라는 플랫폼은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1년 만에 9000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10분 중 8분이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서 일하고, 더 나은 수익을 올리며,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전 직장에 비해 만족도가 매우 높다. 이용자들도 마찬가지로 행복해졌다. 1년 만에 140만 이용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타다의 비결은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다.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문화가 만들어졌고, 바로배차 서비스가 새로운 이동문화가 됐다.

내가 가장 애착을 갖고 하는 일이 새로운 일자리 모델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일하며, 더 나은 수익을 올리고 삶이 행복해진 분들의 이야기다. 법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이지만,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이 분들의 행복을 재단하거나, 직업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노동형태가 바뀌고 있고, 유연한 일자리에 맞는 사회안전망을 정부와 기업이 같이 고민해서 노동의 미래를 준비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냈으면 한다.

나는 소셜벤처에서도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역할은 같다. 메시지를 발신한다. 오랜만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커뮤니케이션으로 학위를 받고 싶었던 대학시절에 상상하지 못했던 인공지능을 공부해보고 싶다.

국회에서, 정당에서, 서울시에서 글이 잘 안 써지면 학교 포스코관 지하1층 컴퓨터실로 향했다. 어느 분의 출마선언문도 그 곳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학생증 출입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지나고 보니 재학생들에게 민폐였겠다. 다른 일에 집중하시다 학점 관리 못하고 졸업을 앞둔 후배님들에게 나의 경험과 경력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읽힌다면 좋겠다. 그렇게 컴퓨터실을 거저 사용한 빚을 갚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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