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령 교수(이화인문과학원)

본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베를린 자유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 현대철학, 여성주의철학, 포스트휴머니즘을 주로 연구하며 현재 이화인문과학원 소속으로 다양한 연구 및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철학의 은유들>, <서양현대철학> 등 강의를 맡고 있고 2016년 강의우수교원으로 선정됐다. 대표 저서로 『예술: 세계 이해를 향한 도전』, 『여성, 타자의 은유: 주체와 타자 사이』, 『은유의 도서관』 등이 있다.

 

작년 여름, 중앙도서관에서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세종서적)을 빌렸다. 방학의 시작을 기념해 강의나 연구를 위한 독서를 떠나 재빨리 휴식으로서의 책읽기로 뛰어들기 위해 그 책을 선택했다. 그의 다른 책, 「독서의 역사」(세종서적)에서 애서가이자 다독가인 망구엘의 지적 수다를 즐겼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밤의 도서관」은 ‘자신만의 도서관’을 지으면서 쓴, 도서관에 대한 책이다. 도서관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모으고 분류하여 보관하는가? 쌓여가는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을 남기고 어떤 책을 버릴 것인가?

작은 서가라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 분류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주제별, 책제목 순, 책표지 색깔 또는 크기에 따라, 책을 구입한 순서 또는 좋아하는 저자의 순위에 따라… 책을 뽑아 읽고 다시 꽂아 두고, 새 책이 들어오고 헌책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처음의 분류체계는 다소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아주 정연하지는 않지만 나름 실존적이고 역사적인 동시에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책을 분류한다.

한 권의 책은 분류체계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픽션’으로 분류되면 유머가 넘치는 모험소설이 되고, 사회학 밑으로 들어가면 18세기 영국의 풍자 연구서가 된다. 또 어린이 문학 쪽으로 분류하면 난쟁이와 거인, 그리고 말을 하는 말(馬)이 등장하는 아주 재미있는 우화가 되고, 판타지로 분류하면 과학소설의 선구적 작품이 되고, 여행서로 나누면 상상 속의 여행이 되며, 고전으로 분류하면 서구 문학 전범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독서의 역사」, 287쪽)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책의 텍스트는 불변하지만 읽기는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책들 사이에 놓이는가에 따라, 시대적·문화적 관심에 따라, 독자의 마음상태나 의도에 따라, 책은 다시 읽힌다. 어떤 책읽기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책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한 권으로 묶여 닫히지만, 계속 다시 열려 깨워진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책표지를 열지 않는다면? 아무도 읽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 책은 계속 잠들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학창시절 서점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보르헤스를 만났다. 시력을 잃어가던 보르헤스는 노년의 어머니를 대신해 책 읽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망구엘은 그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행운으로 기억한다. 국립도서관장이기도 했던 보르헤스는 소문난 애서가이자 다독가였다. 그의 단편소설 「모래의 책」은 어떤 기괴한 책에 대한 이야기다. 우연히 화자의 손에 들어온 기괴한 물건, ‘모래의 책’은 같은 페이지를 다시는 찾을 수 없는, 내부에서 무한 증식하는 책이다. 이 ‘악몽의 물체’를 없애기 위해 소설 속 화자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잃어버리기로 결심하고 축축한 서가 속에 책을 두고 나온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화자는, 많은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사실임을 주장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야말로 ‘사실’이라고 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매체의 출현으로 읽기와 쓰기가 달라졌다. 두꺼운 책을 읽는 일, 어떤 책을 깊이 읽는 일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도래하는 첨단기술의 시대, 책읽기에 미래가 있을까? 정보, 지식을 담은 텍스트가 아니라면, 그 내용을 완전히 소유하지도 못할 책을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을 이유가 있을까? 지식을 자랑하거나 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면 책읽기를 계속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결되지 않는 책읽기의 무한 증식은 기괴한 악몽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놀이다. 보이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교환되지 않는 나만의 소유, 거래되지도 빼앗기지도 않을 힘을 기르는 놀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코드로, 각기 다른 ‘신화의 열쇠’를 가지고 책의 암호를 풀고자 한다. “도서관과 서점은 그러한 보물 상자들을 보관하는 저장소이며 진열대이다.”(「사유의 거래에 대하여」, 37쪽) 손도 대지 않은 책은 물론이요, 이미 읽은 책조차 ‘아직’ 다 읽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소유하면 마치 그 내용도 모두 손에 넣은 듯 느끼기도 한다. “이 모든 책이 나의 것이구나!”(「독서의 역사」, 254쪽)

여기 담긴 보물도 나의 것이 되리라! 그래서 책이 있는 곳, 도서관이나 서점의 서가 앞에서 우리는 책장을 넘겨주기를 기다리는 책들을 바라보며 그토록 뿌듯하게 설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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