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잘하는 건 없지만 멋있는 건 하고싶어’. 아직도 취업 시장의 상품이 되길 두려워하면서, 흥미와 적성의 교점을 찾는 일을 어려워하면서도 흘러가는 시간은 붙잡고 싶었다. 다른 4학년들도 같은 생각을 할까? 해외에서 돈을 번다는 것, 두고두고 남들에게 멋있어 보일만 한 내용이라 생각했다. 비록 무역협회의 글로벌무역인턴은 어느 나라로 파견될 지도 불분명하다 했지만 해외 인턴을 가기 위해 이미 한 학기를 통째로 갈아 넣은 사람이라면 그런 불분명함 정돈 삼켜냈어야 한다. 한 학기 동안 수많은 지원서를 작성하며 알게 된 것은 척척학사 학위도 없는 사람은 나갈 수 있는 해외 인턴의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에 와있다. 분명 원해서 온 곳인데, 나는 지금까지 이화의 프로그램들을 모두 뒤져가며 “다문화적 시각”을 열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움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싱가포르에서 여름계절학기를 들으며 다시 싱가포르 인접 국가에라도 올 일이 생긴다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미국 교환학생 생활을 견뎠는데, 피스 버디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 정도 경험만 있다면 타지 생활이 문제없을 줄 알았건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

짚어내 보자면 더 이상 학생이 아닌, 학생에서 회사원에 가까워진 위치가 현재와 이전의 경험을 동일시할 수 없게 만든다. 부대낄 기숙사생들도 없고 회사 사람들과는 SNS 생활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니까.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환경은 처음이다. 게다가 평일 10시간을 밖에 있다 들어오면 이건 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친구를 만날 체력이 안 받쳐줄 일이다. 하는 일은 주로 기사 번역일 뿐인데도 피로한 건 일반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주말에라도 회사, 집, 회사, 집 루트를 벗어나 보려고 노력하니 또 돈이 많이 든다. 내 월급은 65만 원인데. 돈이라도 펑펑 써봤으면 덜 외로웠을까. 경제적인 독립이 진정한 독립인 데에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다행히 말레이시아라는 나라 자체에는 곧잘 적응한 편이다. 학교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했던 보람은 이런 문화 적응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곳의 처참한 임금 체계만 아니었다면 현지 취업도 고려했을 것 같은 정도다. 시제가 없는 말레이어를 기반으로 남들이 문법이 파괴된 ‘맹글리시(말레이어 식 영어)’를 쓰면 나도 문법은 잠시 잊고 편하게 말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환영받을 수 있는 나라면서 음식 물가가 저렴하다. 이슬람 문화가 낯설지만 존중할 줄 알면 된다. 아니면 화교 문화에 가까이 다가가서 돼지고기 음식 바쿠테(bak kut teh)를 먹을 수도 있다. 직접 부동산 업자들을 만나며 처음으로 계약서에 내 이름이 적혔던 ‘내 집’에도 애정이 쌓여간다.

 

정확히 인턴 생활의 중반 3개월 차에 와 있는 지금, 다행히 사람은 외로움에도 적응해나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경험을 공유할 여유도 생겼고 체력 없는 평일 저녁엔 브이로그 편집을 해볼 생각이다. 한국의 여름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내가 따뜻한 말레이시아의 기후를 좋아하게 된 일상을 잘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은 3개월을 끝마친 뒤에 무엇을 얻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3개월 후에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답할 것이다. 눈물 나게 작은 월급으로 외로움을 뛰어넘는 게 업무 역량의 성장보다 더 커다란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스펙을 쌓는데도 속이 답답한 벗들이 있다면 해외 인턴 도전을 추천하고 싶다. 허울에 대한 기대가 벗겨지면서 스스로가 단단해지기까지 속이 더 답답해질 일이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이고 그 속에서 뜻밖의 성장을 이룰 것이다. 마지막 팁으로, 홀로 파견되지 않는 해외 인턴 국가를 택한다면 초기 정착 과정이 더 수월할 것이라 전해주고 싶다.

지금은 비자 트립의 기회로 한국에서의 황금 같은 일주일 휴가를 보내고 있다. 돌아가면 회사의 신사업과 관련된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어떤 업무 스트레스가 있을지, 어떤 업무 역량의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6개월간의 경험들이 정말 인턴 업무의 종료와 동시에 영원히 종료될 것임을 안다. 이런 성장통 또한 다시는 없을 것이란 의미겠으니 그 속에서 소중함을 찾고 싶다. 3개월이 지난 후엔 좀 더 취업 시장에 준비된 사람이 되어있을까? 글쎄, 하지만 나를 어느 곳에서든 ‘스스로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포장할 자신감만큼은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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