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4시간, 장거리 통학생들을 만나다
왕복 4시간, 장거리 통학생들을 만나다
  • 임유나 기자
  • 승인 2019.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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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지옥철, 갑작스러운 사고, 긴 이동시간…장거리 통학생들이 말하는 통학의 고충
그래픽=박채원 기자 cw.ante.park05@ewhain.net
그래픽=박채원 기자 cw.ante.park05@ewhain.net

수업이 2시간 남았지만 서둘러 집을 나서는 학생들이 있다. 통학 시간이 편도로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장거리 통학생들은 1교시 수업이 있는 학기에는 해도 뜨지 않은 어스름한 오전6시에 집을 나온다. 주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에 거주하기에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학교로 향한다.

인터넷상에는 통학생들의 통학 시간에 따라 별명을 붙인 ‘통학 레벨 측정기’라는 글이 화제다. 이 글에 따르면 통학 시간이 0분~15분이면 통린이, 16분~30분은 통학 산업 기사, 31분~45분은 프로 통학러, 46분~1시간은 통학맘, 1시간~1시간30분은 순례자 그리고 1시간30분 이상은 외교사절단이라고 부른다.

본교에도 프로 통학러를 넘어 외교사절단이 돼 매일 학교와 집을 오가는 학생들이 있다. 도로 위에서 약 4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

곽태은(역교·16)씨는 분당, 이예빈(심리·17)씨는 시흥, 정다현(사회·18)씨는 용인 그리고 김지은(커미·18)씨는 수원에 거주한다. 통학 시간은 1시간30분에서 2시간이 소요된다.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기숙사나 자취 대신 통학을 택한 이유는 뭘까. 이들은 모두 통학 과정은 힘들지만, 집에 오면 편안한 공간에서 가족들과 지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씨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숙사에서 지내서 집에서 거주하고 싶었다”며 “집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하고 키우는 고양이를 매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성격인데 기숙사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편한 공간을 갖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안전과 비용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곽씨는 “요즘 세상이 흉흉하기도 하고 자취를 하면 귀가 시간 같은 걸 확인 못 하니까 걱정하시는 것 같다”며 “부모님이 자취를 반대해 4년째 왕복 3시간을 오가고 있다”고 답했다. 정씨는 “교통비도 많이 들지만, 자취를 하면 들어가게 되는 초기 비용도 만만치 않아 섣불리 자취를 결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통편이 잘 마련된 점도 통학을 하게 된 이유가 됐다. 환승을 2~3번 해야 하지만 버스와 지하철 노선이 학교에서 집 주변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 김씨는 “통학은 힘들지만, 학교 가는 교통편이 있어 가능하면 집에서 다니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 역시 “거주지가 경기도라 자취하기에는 거리가 가깝고 그렇다고 통학을 하기에는 힘겨운 거리”라고 설명했다.

 

이예빈씨가 제작한 영상 ‘통학의 미화’
제공=이예빈씨
이예빈씨가 제작한 영상 ‘통학의 미화’
제공=이예빈씨

 

 

 

 

 

 

 

 

긴 통학 시간 동안 학생들은 주로 핸드폰으로 웹서핑을 하거나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한다. 노트북을 펴 과제를 하고 시험 기간에는 공부하며 지하철을 열람실로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이씨는 이와 같은 모습을 담은 영상 ‘통학의 미화’(2019)를 제작했다. 이씨와 다른 통학생들이 촬영한 통학 풍경을 약 1분20초 분량의 영상으로 편집했다. 그는 “통학을 시도해보려는 학생들에게는 통학의 좋은 면을, 통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우리가 좋은 풍경을 지나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통학의 미화’는 7월17 서울국제지하철영화제 특별경쟁 부문에 선정돼 영등포 CGV에서 상영회를 하기도 했다. 이씨는 “통학을 하면서 핸드폰만 보며 그 세상에 빠져있는 게 안타까웠다”며 “바깥 풍경을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같고 햇살이 예쁘게 비춰 다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거리 통학을 매일 반복하기는 쉽지 않다. 긴 이동 시간으로 체력적 피곤함을 느끼는 것부터 막차 시간을 고려해 수업 후 진행되는 동아리나 팀플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다. 김씨는 “대외활동이나 동아리를 할 때 오후9시나 10시가 되면 한창 활동을 하고 있어도 집에 가야 해서 중간에 나올 때가 있다”며 “공강을 만들기 위해 3~4연강을 불가피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통학 시간이 오전7시~9시 출근 시간과 겹치면 교통량과 유동인구가 많아져 버스와 지하철은 ‘만원 버스’와 ‘지옥철’이 된다. 곽씨는 “아침 시간에 통학할 때마다 사람이 많아서 문에 매달려 오는 데 영화 한 편 찍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출퇴근 지옥철 시간에 겹치면 사람이 너무 많아 서 있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1시간30분을 그냥 버린 느낌”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교통비 부담도 있다. 한 달 교통비로 5일 모두 통학을 하는 곽씨와 정씨는 12만 원, 하루 공강이 있는 이씨와 김씨는 6~7만 원이 든다. 이씨는 “이번에 경기도 교통비가 올라 생활비가 더 부담된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지난 7월부터 버스업체를 포함한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주 52시간 노동시간을 준수하면서 9월28일 버스 요금을 인상했다. 경기 시내버스 요금은 200원, 좌석형 버스와 직행 좌석형 버스(광역버스)는 400원 상승했다.

교통수단에 문제가 생길 때도 있다. 갑자기 지하철이 연착되면 학생들은 일찍 나와도 지각을 피할 수 없다. 지하철 역무실이나 홈페이지에서 발급하는 연착증이 있지만 인정해주지 않는 교수도 있다. 김씨는 “지하철 파업할 때 걱정이 많다”며 “연착증이 인정되지 않기도 하지만, 장거리 통학생들의 상황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버스는 공식적인 연착증이 없어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곽씨는 타고 가던 버스가 고장 나 고속도로에서 내려 뒤이어 오던 버스에 옮겨 탄 적이 있는데 인증할 방법이 없었다. 정씨 또한 타고 가던 버스가 양지IC에서 사고가 난 경험이 있다. 그는 “원래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 커피 한 잔 살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지각했다”며 “인터넷에 뜬 당시 버스 교통상황을 다 캡처했는데 지하철 연착증처럼 공식 문서가 아니라 인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덕여자대학교와 국민대학교는 장거리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학생들은 교통상황이 혼잡한 오전 시간대에 약 30분~1시간 거리의 신촌역, 잠실역, 시청역 등 학교 주변 주요 거점 역에서 버스를 탈 수 있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의 경우 통학 지원금도 지급한다.

김씨는 “본교도 많은 학생들이 환승하는 주요 거점 역에 셔틀버스를 배치해 운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씨는 “셔틀버스가 환승역까지 오면 교통비 부담을 덜 수 있다”며 “학교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이 적다고 생각하는데 교통비 부분에서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